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주한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 사진=강명구 마라토너 제공
우리나라에는 총 18개의 정부 부처가 있습니다. 정부조직법을 보면 제1조(목적)는 '이 법은 국가행정사무의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수행을 위하여 국가행정기관의 설치·조직과 직무범위의 대강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2조 1항도 '중앙행정기관의 설치와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합니다.
각 부처는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직무를 실행합니다. 통일부의 경우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정부조직법 31조가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4조에도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이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조직법이 정한 바와는 다른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내정했습니다. 평화적 통일 정책을 추진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내야 할 통일부 장관에 '북한 붕괴론'과 정부 공식 통일방안을 부정하는 김영호 후보자를 내정한 겁니다.
그는 5000여 개가 넘는 유튜브 영상과 각종 책, 언론 매체를 통해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헌법 4조를 거론하고 통일부의 임무를 이야기하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했습니다.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자마자 5000여 개가 넘는 유튜브 영상을 지우고 채널도 삭제하면서 본인의 정체성도 지운 걸까요.
아닙니다. 청문위원이 지적했듯 '장관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청문회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학자로서의 견해일 뿐"이라고 밝힌 겁니다.
김영호 후보자가 본인의 입신양명만을 원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진정한 통일부의 역할을 이룩하기 위해 달렸습니다.
'평화 마라토너'로 알려진 강명구씨인데요. 강씨는 지난해 8월 21일 제주도에서 출발해 베트남, 인도, 튀르키예, 그리스 등 16개국을 거쳐 313일 만에 바티칸에 도착했습니다.
강명구 마라토너를 한 차례 만나 본 적이 있는데요. 그는 지난 2019년 5월 뇌경색을 겪으며 사실상 마라톤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됐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 그가 교황을 만나기 위해 313일을 달려 바티칸에 도착했는데요. 313일이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그가 달린 건 교황에게 12월 25일 성탄절에 판문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달라는 청원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다리로 한반도 평화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했던 겁니다. 입신양명을 위해 자신의 과거 발언까지 부정하는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비교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