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코스닥 우량기업들이 잇달아 코스피 시장으로 이전상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의 이탈로 코스닥 시장이 또 한 번 크게 위축될 위기에 처했는데요. 지난해 코스닥 글로벌 지수를 출범시키며 블루칩 기업들을 잡아두려 노력한 한국거래소의 노력이 무색한 상황입니다. 거래소는 공적자금 펀드, 연기금 등의 큰손을 코스닥 시장에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코스닥 떠나는 우량기업…저평가 이어지나
코스닥 시가총액 10위 종목 현황(21일 기준)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료=한국거래소)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시가총액 4위에 올라 있는 기업
엘앤에프(066970)가 코스피로 이전상장을 준비 중입니다. 엘앤에프는 지난 19일 공시를 통해 코스피 이전상장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시총 5위인
포스코DX(022100)도 이전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코스닥 시총 2위인
에코프로비엠(247540)도 지난 19일 이전상장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며 주가가 급등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겪었습니다. 에코프로비엠은 이날 장마감 후 이전상장 계획이 없다고 공시했고, 이튿날 개장 당시 주가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뜬소문에도 에코프로비엠의 이전상장을 믿은 것은 이런 사례가 주기적으로 반복됐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코스닥 기업들이 코스피 시장으로 넘어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미지 제고입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코스피에 상장하면 아무래도 회사의 위상이 높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코스닥은 벤처라든가 신생 회사들로 이뤄졌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코스피는 안정적이고 튼튼한 기업들 위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코스피200지수 등 주요 지수에 편입될 경우 패시브(지수 추종 투자)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기대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업에겐 옮겨가는 것이 좋겠지만, 코스닥 시장으로선 우량기업 이탈이 반복될 경우 경쟁력 저하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저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코스닥 우량기업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를 만들었는데요. 코스닥 시장 내 블루칩 기업 중 시총, 재무실적, 지배구조 등을 충족한 기업들을 코스닥 글로벌 지수에 포함시켜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 유치를 돕겠다는 의도입니다.
엘앤에프와 포스코DX는 아직 지수에 포함돼 있지만 이전상장을 검토하고 있는만큼 향후 이탈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지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우량기업을 코스닥에 묶어 놓기에 벅찬 것일까요. 올해 코스피로 이전상장을 완료했거나 이전상장 예정인 기업들 대부분이 바로 코스닥 글로벌 지수에 속한 우량기업들입니다. 엘앤에프와 포스코DX도 이전상장을 검토하고 있는만큼 향후 이탈할 경우 지수 구성에도 큰 변화가 있겠죠. 애써 노력했던 거래소로서는 힘이 빠지는 일입니다.
반복되는 이탈…기관투자자 관심 기울여야
코스닥 우량기업들이 코스피로 향하는 현상은 과거에서부터 꾸준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상장한 종목은 총 12종목입니다. 그 중
셀트리온(068270),
카카오(035720),
동서(026960), 포스코케미칼(현
포스코퓨처엠(003670)) 등은 이전상장 직전까지 각각 코스닥 시총 1, 2, 3, 5위에 있던 대표 얼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탈은 코스닥 시장을 위축시켰습니다.
올해도 벌써
SK오션플랜트(100090)와 비에이치가 지난 4월과 6월에 각각 코스피로 넘어갔습니다. 나이스평가정보는 지난달 20일 코스피 이전상장을 위한 예비심사청구를 거래소에 접수했습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엘앤에프와 포스코DX 까지 코스피로 간다면 향후 5개 기업이 코스닥을 떠나는 셈입니다.
황 연구위원은 "코스피 시장으로 향하는 코스피 200 편입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하다"며 "가장 대표성이 있는 지수다보니 추종 자금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황 연구원은 "코스닥에 계속 남아있게 만드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큰 효과를 못보고 있다"며 "코스닥 시장의 저평가 해소를 위해선 기관 투자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전상장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코스닥 기업들이 잔류했을 때의 장점을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최근 코스닥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성과가 2~3년 전보다 좋아지고 있고 거래소도 공적자금 펀드, 연기금 등이 코스닥 쪽으로 유치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단번에 대책이 나올 순 없겠지만 코스닥 시장의 프리미엄도 차근차근 생겨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