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저도 한때 진상 학부모였습니다.
첫째가 유치원 다녔을 때예요. 2020년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유치원서 급식사고로 인해 수많은 유아들이 식중독에 걸렸던 일이 있었어요. 기사를 쓰다보니 유치원의 단체급식 관리 시스템과 위생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식중독 사고와 관련된 공지를 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유치원에서는 이와 관련된 안내가 없었어요. 참다못해 유치원 앱에 글을 남기고 부원장과 통화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치원 급식 사고로, 교육기관의 급식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인데, **유치원은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불안해하거나 궁금해하는 학부모를 위해 관련 내용을 공지하고, 안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물었습니다.
부원장은 "그런 것을 공지해야 하느냐,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친절한 응대였습니다. 다만 수십년 교육업에 종사한 교육전문가스러운 말투 속에 포장된, '니가 뭘 알아, 되게 귀찮게 구네'라는 사고방식도 배어있었습니다. 이내 직업병이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유치원에서는 그렇게 잘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녀를 맡긴 입장에서는 전혀 그 사정을 알 수 없으니 궁금하고 불안하다, 안내가 필요한데 왜 그런 업무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묻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끊고나자, 제정신이 들었어요. 학부모 입장이 아닌 유치원 급식관리 실태를 취재하는 '기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가족 중에 교사가 있어 가정교육과 지도, 단체 생활에 대해 많이 의논하는 편인데요. 이 일에 대해 설명하자, 저의 행동이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꾸중을 들어야 했답니다. 상식적으로 혹은 원론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야기해볼 수는 있지만 자식을 맡긴 입장에서 그것을 따져묻거나 지적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저의 다소 공격적인 태도로 인해 첫째 아이가 교사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결국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혹시나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맞는지 틀린지에 대해 먼저 확인하고 우려되는 사항을 '온건'하고 '예의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같은 우려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 가장 '베스트'일 것입니다. 유치원 급식관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에 대해 소위 '유난'을 떨면, 그 화는 제 자식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이견이나 항의를 받았다고 해서 이에 대해 학생에게 앙갚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따져묻고,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교사)가 교사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학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나 감정은 고스란히 제 자식을 향할 겁니다. 한마디로 교사도 감정을 가진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나니, 더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학부모)의 자존심이나 감정보다 자녀의 올바른 성장이 더 중요하니까요.
26일 오전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한 시민이 추모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합동조사단을 꾸려 오는 27일까지 교사 사망 사안에 대해 조사를 벌인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인지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 학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내 자식만 귀하다고, 내 자식 이야기만 듣고 학교 교사를 몰아붙이거나 따지는 등 내 주장를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부 학부모들처럼 "내가 변호사"라면서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지위를 앞세워 교사를 무릎 꿇게 한들, 내 자식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일지 그들은 생각이나 해보았을까요.
제 자식만 싸고돌며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은 교사는 해당 학생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지요. 다른 학생과 비교해 현격한 수준의 불이익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교사가 학부모의 위력(?)을 이미 경험했을 테니까요. 동시에 교사만이 줄 수 있는 학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 관심 또한 잃게 될 것입니다. 대신 싸늘하고 차가운 감정만 남겠지요. '어린이'인 초등학생들에게는 교사가 주는 학습적인 지식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눈빛과 애정, 말투, 보살핌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제 자식이 교사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일수록 이들에게 교사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고 의지하고 존중할수록 내 자식도 교사로부터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상호 신뢰를 쌓아갈수록 교실은 배움과 애정으로 가득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