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12년전 신용등급 강등 당시를 떠올리며 불안감이 커졌는데요. 지난주 일본 금융당국의 스탠스 변화로 부담이 가중됐던 터라 출렁임도 컸습니다. 국내 증시가 2차전지 열풍으로 과열된 상황에서 글로벌 노이즈가 발생해 변동성 확대에 대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거 악몽 떠올라
2011년 미 신용등급 강등 당시 주가 지수 (그래픽 =뉴스토마토, 자료=한국거래소, 인베스팅닷컴)
지난 2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습니다. 피치는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 악화 등을 반영해 등급을 내렸다"고 설명했는데요. 부채한도 상향 조정 때마다 정치권이 대치하는 리스크도 지배구조 악화를 초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열린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가 50.60포인트(1.90%) 하락한 2616.47에 마감했고 코스닥지수는 29.91%(3.18%) 밀린 909.76포인트로 장을 마쳤습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2.30%,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 항셍지수도 각각 0.89%, 2.47%씩 동반 하락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금융시장에서 벌어진 충격 탓에 외환시장도 출렁였습니다. 1270원대까지 하락했던 원달러환율이 하루새 14.7원 뛰어올라 1298.5원을 기록, 다시 1300원 선에 다가선 것입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지난 2011년 이후 12년 만입니다. S&P는 2011년 8월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부채 한도 인상을 놓고 대립하자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시켰는데요. 그 충격으로 S&P500은 7월22일 고점 1345포인트에서 8월10일 1099포인트까지 16.7%나 하락했습니다. 코스피 역시 8월1일 2172포인트에서 같은 달 22일 1711포인트로 21.2% 급락한 전력이 있습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은 2011년과 달라 그로 인한 혼란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2011년엔 금융위기로 유례없는 대규모 통화정책을 시행해, 새로운 위험 요인이 나타났을 때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걱정이 컸다"며 "지금은 금리인상으로 시중에 풀었던 돈을 적지 않게 회수환 상황이라 여차하면 다시 통화완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캐리 이탈 가능성에 미국채 급등
전문가들의 분석과 달리 단기적으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영향이 미친 이유는 앞서 일본이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수정, 글로벌 금융시장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벌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지난달 28일 일본중앙은행(BOJ)은 장기금리 변동폭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YCC 유연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10년물 국채 무제한 매입 금리를 기존 0.5%에서 1.0%로 올렸습니다.
YCC 정책은 금리 변동의 상한을 미리 정해놓고 장기 금리 상한선인 0.5%를 넘어가면 국채 무제한 매입을 단행하며 금리가 상승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금융완화 정책입니다. BOJ는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한 긴축의 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YCC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가 약간 더 오를 수 있게 허용하기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금융완화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통화완화 출구 전략이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그럼에도 시장은 일본이 2013년부터 이어오던 완화정책을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로 엔환율은 약세를 보이고 있으나 일본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BOJ의 목표인 2%를 15개월 연속 상회하는 등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금리가 오를 경우 해외로 나갔던 투자(엔케리 트레이드)의 일부가 일본으로 돌아올 유인도 커집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증권에 투자한 금액은 531조엔(약4807조원)에 달합니다. 10년간 약 70%가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엔캐리 트레이드가 위축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해외 장기채권 투자잔액은 2023년 1분기 약 2조2000억달러에 달하는데 절반 이상이 미국에 집중돼 있다"며 "국가별 채권 잔액을 봐도 아일랜드(15%), 호주(12%), 네덜란드(11%) 등에서 일본이 보유한 비중이 10%를 넘어 엔캐리 자금이 이탈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에서 YCC 조정에 관해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미국 증시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이날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4%를 넘어섰습니다.
미국과 일본발 대형 변수가 등장하자 국내 증시도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2차전지 랠리로 과열 양상을 보이던 와중에 글로벌 노이즈가 발생하는 바람에 충격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론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특히 쏠림이 심한 업종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금리가 (지난 2일)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일본 국채금리도 0.6%까지 올라간 상황이라 국채금리가 안정을 찾아야 유동성 경색이 완화될 것"이라며 "미국 증시가 흔들리면 쏠림 현상을 보였던 2차전지 등은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