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금융당국이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에 나섰습니다. 적자기업들에게 더욱 완화된 요건으로 증시 입성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특례상장으로 증시에 먼저 입성한 기업들 대다수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가 큽니다. 상장 주선자의 책임 강화로 증권사들의 부담은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금융위, 초격차 기술특례 상장 도입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7일 금융위원회는 우수 기술기업의 성장지원을 위한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달 20일 개선 방향을 밝힌 후 다섯 차례 관계기관 회의를 거쳐 세부안을 확정했습니다.
금융위는 먼저 상장 신청단계에서 '초격차 기술특례'를 신설해 딥테크·딥사이언스 등 국가적으로 육성이 필요한 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 중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을 검증 받은 기업에 대해 단수 기술평가를 허용할 계획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소재·부품·장비 업종에 대해서만 허용되던 단수 기술평가 대상을 국가적 육성이 필요한 첨단기술기업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해 투자자 보호 측면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초격차 기술특례 대상기업의 경우 중견기업이 최대 출자자여도 기술특례상장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하나의 특례 유형 내에서도 중점 심사항목을 다르게 정할 수 있는 등 복잡하게 운영되던 기존 제도를 손질할 계획입니다. 기술력 있는 기업은 '혁신기술 트랙'을, 사업모델이 차별적인 기업은 '사업모델 트랙'을 활용합니다.
심사 단계에서도 기술성이나 사업성 외 사유로 상장에 실패한 기업들이 상장에 재도전할 경우 '신속심사제도'를 적용해 기술평가 부담을 줄이고 심사기간도 45일에서 30일로 단축합니다. 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와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심사에서 중복되는 심사 요소는 두 기관의 사전 정보공유로 해소할 방침입니다.
기업들이 보유한 첨단·전략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상장심사 참여도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국책연구기관의 기관평가지표에 '거래소 기술특례상장 기술평가 참여 실적' 등을 추가해 국책연구기관의 참여도 독려할 계획입니다.
급락·적자기업 '수두룩'
표=뉴스토마토
한국거래소는 지난 2005년에 상장 특례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는데요. 수익이나 매출이 없는 기업도 기술의 혁신성이나 사업의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만든 제도입니다. 적자기업도 혁신기술을 앞세워 상장,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기대와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년간(2021~2022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은 각각 31사, 28사 등 총 59개사입니다. 이들 중 현재 공모가를 웃도는 성적을 내고 있는 기업은 21개사에 불과합니다. 기술특례상장 이후 투자자들의 기대에 보답한 기업도 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기업이 더 많은 것입니다.
물론
레인보우로보틱스(277810),
루닛(328130)처럼 눈에 띄는 강세를 보여준 기업도 있습니다. 두 기업은 상장 후 각각 공모가의 830%, 456%씩 상승했습니다. 꽤 오랜 기간 고전하다가 올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의 지속적인 투자 소식에, 루닛은 챗GPT 열풍이 의료용 인공지능(AI)으로 번지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가가 하락해도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줄 투자자도 있겠죠.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오히려 적자가 확대됐거나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네오이뮨텍과 바이젠셀은 아직까지 매출이 없습니다. 바이오 업종의 특수성이라지만 영업손실 확대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은 애가 탑니다. 2021년 상장한 네오이뮨텍은 그해 5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2년엔 582억원으로 손실이 늘었습니다. 바이젠셀도 2021년 131억원, 2022년 18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두 기업은 올해 1분기에도 각각 121억원, 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기업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이후에도 고전 중인 기업이 많고 그로 인한 손실도 불어나고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특례 상장의 문턱을 낮추는 셈입니다. 이로 인해 적자기업들의 상장이 계속 이어지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성장성 특례로 상장한 기업의 경우 주관사에서 상장 후 6개월간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부여하는데요. 주가가 공모가 90% 밑으로 하락할 경우 공모 청약자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주관사에 되팔 수 있는 권리죠. 투자자는 보호받지만 풋백옵션을 부여한 증권사로서는 기업의 주가 하락이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주관사 책임, 사안별로 판단해야"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기술특례 상장을 주선하는 증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금융위는 기술특례상장사가 상장 후 2년 내에 부실화될 경우 상장 주관사가 이후 기술특례상장을 주선할 때 6개월 풋백옵션을 부과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 인수 주식 보호예수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등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했습니다.
주관사별 기술특례상장 건수·수익률 등도 전자공시(KIND)에 비교·공시해 주관사의 우수기업 발굴 역량을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1~2년 후의 미래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장 후 3~5년의 이벤트를 주관사가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특례상장 기업에 대한 책임을 상장 주관사에게만 지울 경우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전유물이었던 특례상장 문턱이 낮아지며 소부장,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업종이 다변화되는 추세는 환영한다"면서도 "단기적으로 상장 후 3년 등 일정기한 내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책임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