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대외일정으로 납북자, 북한 억류자, 국군포로 관련 단체 대표, 억류자 가족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정부가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핵심 피해 당사자'들을 배제했습니다. 앞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결정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를 배제했던 윤석열정부가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문제해결에 나선 겁니다.
납북자 직접 챙기겠다더니…통일부가 외면 주도
김 장관은 3일 첫 대외 일정으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관련 단체장을 면담했습니다. 면담에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납북자가족모임, 물망초 대표와 2013년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 등이 참석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조직개편안에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등을 담당하는 장관 직속 납북자대책반도 신설했습니다. 당시 문승현 차관은 "조직의 어젠다이자 장관 어젠다로 챙기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납북자 그리고 억류자·국군포로 문제는 북한이 우리 국민에 가하는 인권문제"라며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끝없이 개선해 나가야 하지만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 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한은 일체의 반응도 없고 억류자 생사도 확인해 주지 않는다"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대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번 면담에서 '주요 피해 당사자'를 배제시켰습니다. 북한에 억류된 상태에서 숨을 거둔 고 손동식 이등중사의 딸인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와 1969년 납북된 황원 MBC PD의 아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가 이번 면담에 초대되지 못했습니다. 황 대표의 경우 통일부가 직접 면담에 초청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날 손 대표는 통일부가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펼쳤습니다. 그는 "국군포로 단체와 면담한다면서 왜 엉뚱한 단체와 면담을 하냐"며 "통일부가 이렇게 소외시킬 수 있냐"고 토로했습니다.
통일부는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후에 다시 다른 자리를 만들어 의견을 듣겠다는 입장"이라고만 해명했습니다.
강제동원 핵심 당사자 배제 논란 '판박이'
피해자는 외면한 채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통일부의 태도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고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한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모습입니다.
정부는 지난 3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으로 국내 재단을 통해 우선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방안에는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도 담기지 않았으며 가해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 등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처'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 가해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서둘러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 배경에는 '국익'이라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는 회담 결과로 얻은 국익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 국익은 일본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양금덕·김성주·이춘식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3명은 정부가 발표한 변제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는 지난 3월 국회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돈 안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금 공탁 절차를 무리하게 진행,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피해자 중심이 아닌 '국가 간 관계 문제'로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하고 있습니다.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녀 이고운씨가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열린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편 김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종전선언을 절대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는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전시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묻히게 된다"며 "윤석열정부는 종전선언을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현재 한국전 종전선언이 핵심인 한반도평화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종전선언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