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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반복되는 횡령 사고, 개인 일탈 아니다
입력 : 2023-08-07 오전 6:00:00
"A4용지, 포스트잇 같은 회사 비품을 몰래 챙겨가는 것은요? 믹스커피를 가득 집어간는 것도 횡령으로 볼 문제일까요. 내부통제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하는지 고민이 있는 겁니다."
 
'내부통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은행권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내부통제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한 직원이 700억원대의 횡령 사고를 내더니, 얼마 전에는 경남은행에서 부장급 직원이 560억원대의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은행권이 또 다시 뒤집혔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113억원(65건)이었던 국내 금융사 횡령사고 규모는 2019년 132억원(62건), 2020년 177억원(50건), 2021년 261억원(46건), 2022년 1011억원(61건)으로 해마다 급증했습니다. 올해 6월까지 적발된 횡령사고 금액이 31억원인데요. 이번 경남은행 사건을 합치면 600억원 규모로 늘어납니다.
 
일개 은행원의 말에 트집을 잡을 마음은 없습니다만, 아직까지 횡령 범죄를 '개인의 일탈'이라고 보는 인식이 파다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웅덩이를 흐려놓고 있으니 올바르게 근무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요. 문제는 금융당국과 금융사의 시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수년간에 걸쳐 내부 직원의 횡령을 눈치채지 못하고서는 '자체 조사 결과 횡령 사고를 적발했다'고 강조하기 급급합니다.
 
마치 금융사 내부통제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방충망을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도 어떤 식으로든 모기는 집으로 들어오기 마련이고, 마음 먹고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겠지요. 대형은행의 임직원수가 1만명이 훌쩍 넘는 것을 감안하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고질적인 횡령 사고를 개인의 일탈 문제로 돌리기 위해서는 금융사가 법 제도를 확실히 준수하고 있다는 점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매번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사나 당국의 대책은 사실상 구두선에 그칩니다. 순환근무제와 명령휴가제, 단말기 접근통제 등 재탕삼탕 내부통제 대책을 내놓거나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내부고발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지요.
 
내부통제를 강화한다는 구실로 당국이 콕 집어 지목한 자금 담당 부서만 직무 배치나 근무연수를 조정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하던 직원이 잘 한다'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횡령 직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당연히 이어져야 하겠지만 법과 제도적 허점을 유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요. 
 
회사원들이 사내 비치된 커피나 포스트잇, A4용지 등 비품을 가져가는 행위를 우스갯소리로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고도 합니다. 조직에 불만이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화재가 된 바 있지만 소확횡에도 처벌이 뒤따릅니다. 비품 관리자가 아닌데 회사 물건을 함부로 가져갈 경우 형법상으로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고,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비품을 관리하는 담당자라 하더라도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회사 비품을 가져가는 것도 절도이자 횡령죄인데 고객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사에서 횡령이라는 단어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횡령 사고를 막을 법 제도가 느슨한 것이 아닙니다. 권한과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도외시하고 개인 일탈로 치부하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뼈저린 각오와 반성을 하지 않는 한 금융범죄의 재발은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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