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오는 18일(현지시각) 열리는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의제 등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존 커비 전략소통관은 지난 9일 “예고할 것은 없다"면서도 "논의할 내용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NSC 대변인 격인 그는 "캠프 데이비드는 중요한 외교 행사와 정상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라고 의미규정을 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모시고 인도·태평양 지역 및 전 세계에서의 한미일 3국 관계 중요성과 관련해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논의(discussion of historic proportions)를 고대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미국, “역사적 의미를 갖는 논의” “역사적 회담 될 것“ 강조하는 이유는?
커비 소통관은 즉답을 피했지만,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의 지난 3일 일본 지지통신 단독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대체적인 파악이 가능합니다. 그는 ”역사적인 회담“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포괄적인 것과 일반적인 공동성명 등 2개의 문서가 발표될 것”이라며 “문서엔 국가안전보장과 경제안보에 대한 언급도 이뤄진다”고 소개했습니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매년 1회 정례화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자 바이든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민주당의 실력자인 그는 윤석열정부가 지난 3월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하자, 중국에 대항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례없는 속도의 재편성"이라고 규정하면서 무대 뒤의 이야기기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지난 1년간 한미일 외교관들이 40차례 이상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매뉴얼 대사의 ‘해설’에, 바이든 대통령이,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의 ‘봉합’을 수차례 “근본적 변화(fundamental change)라고 강조한 것까지 톺아 보면, ‘한미일 3국 협력의 새 시대 (new era) 선언’ 같은 외교적 표현 아래, 외교·안보 분야 협력을 제도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예사이 가능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일이 공격 받을 경우 상호협의를 의무화“(duty to consult)하는 ‘역사적 공동성명’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난 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는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매개로 안보협력을 하는 현재의 빈틈을 메우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미일이 안보 위협에 공동대처한다는 내용의 선언이 나올 것임을 예상케 합니다. 중국이 ‘핵심이익 중에서도 핵심이익’이라고 간주하는 대만 문제를 뺄 리 없습니다. 물론 중국을 의식해 미리 적을 상정하지 않는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성 표현을 만들겠지만, 내용적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 현재 한일관계 불가역적 상태 고착화 시도?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현재의 한일관계를 불가역적 상태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역대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골대를 움직여 왔다”고 비판해 왔고, 윤석열정부에서의 한일관계 개선도 정부끼리만 화해한 일시적인 봉합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큰 형님’ 미국이 있는 자리에서, 한미일 협력강화하는 명분 아래 매조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역대 미국 정부가 요구해 왔던 것이고,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적극 추동한 바 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기시다 정부가 가장 급박하게 한미일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할 사안입니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뒤 각료회의를 열어 최종 방침을 확정하고 이달 하순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의 입을 통해 오염수 방류를 직접 언급하는 방안을 한국과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탱크 (사진=연합뉴스)
심지어 일본이 한미일 성명에 오염수 방류지지 내용을 넣자고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가 거부했다는 <조선일보>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 문제는 3국 정상회담 의제 자체가 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보도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정부 설명대로 공식 선언문이나 공동성명에 명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정상들의 모두 발언이나 회담 전후 언론과의 문답에서 의사표현은 가능한 것이고 이는 용인하는 분위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일본 내 지지가 약한 상황에서 기시다 정부로서는 캠프 데이비드라는 대형 무대를 어떤 형태로든 활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국 외교의 상징 장소’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은 이매뉴얼 대사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숱하게 강조하는 대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적’이고 '근본적'인 회담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동맹에서 ‘군사분야 상호 협의 의무화’는 ‘자동 개입’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에서, 이는 ‘한미일 동맹’을 의미합니다. 작용은 항상 반작용을 동반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과 더욱 강한 결속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특히 중국은 한미 동맹까지는 인정하지만, 여기에 일본까지 결합하는 것에는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의제는 분명한데 한국의 어젠다는 무엇인가요? 미국과 일본 뜻대로 따라가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되돌이키기 어려운 중대한 외교·안보 사안들에 대해 국민적 토론이나 의견수렴도 없이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 것인가요?
황방열 통일·외교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