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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섬뜩한 대통령 경축사, 지성은 침묵할 건가
입력 : 2023-08-17 오전 6:00:00
듣기에 섬뜩한 표현들이 마구 나온다. “반국가세력들의 준동”,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 등등. 광복절에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했다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공격성 언사들이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나온 문장은 이러하다. “이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올해 6월의 자유총연맹 출범 기념사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의 일관성이 보인다. 어쩌다 나온 발언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존재 이유이자,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1933년의 독일의 나치는 과반수에 미달되는 불안한 집권을 시작했다. 그해 2월에 독일의 국회의사당이 불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치가 이를 공산주의자 소행으로 몰아가며 당시 의회 제2당인 공산당을 반국가세력화 했다. 당시 괴벨스는 이 사건을 두고 “공산주의를 척결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히틀러는 의회를 거치지 않아도 자신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는다. 당시 히틀러의 독주를 여는 첫 번째 계기가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공산주의는 그 자체로 선악을 떠나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적절한 상징이 된다. 공산주의와 내통할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조사하고 구금할 수 있는1947년 미국의 충성 서약제도는 또 어떠한가.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는 공산주의자 5만 명을 수감하는 비밀 계획도 수립했다고 한다. 이것이 1950년대 미국 정치사상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된 매카시 선풍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대기자는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정적을 공격하는 데 집착하는 대통령을 “행정 권력의 신경쇠약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고 대통령 지지율은 장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윤석열 정부야말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철학의 빈곤, 공공 의제를 설정하고 공적 자원을 동원하는 리더십의 빈곤으로 인해 길을 잃고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행정의 수반으로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섬뜩한 표현이 반복되는 지금은 대통령의 심리상태까지 의심해보아야 할 판이다. 대통령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극우 유튜버들에게나 나올 법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물속의 공기방울처럼 윤 대통령이 점차 자기만의 정신세계가 있고, 스스로를 그 속에 가두는 것처럼 보인다. 입법과 사법 권력까지 자신이 통제하고 싶어 하는 초조함도 보인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공직자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강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조급증이 비정상적인 연설문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국민은 이런 대결 선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의 이데올로기에 한국의 집단 지성이 침묵을 하게 될 경우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독일 역사학자 한스 몸젠은 “히틀러 한 사람에게만 모든 죄의 책임을 씌우는 독일 지성의 안일함이 더 큰 죄”라고 했다. 지금은 그 말을 뼈저리게 새길 때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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