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2일 충북 청주기지에서 열린 23년 전반기 소링이글 훈련에서 FA-50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뉴시스 사진)
K방산이 요즘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73억달러를 수출해 세계 8위권에 이르렀죠. 2021년에는 우리나라 방산 수출이 수입액을 초과하는 첫해를 기록했습니다. 수출 효자, 효녀 종목이 몇 가지 있는데요. 항공 무기 가운데는 FA-50 경공격기가 으뜸입니다. 지난해 폴란드에 48대, 4조원 규모 수출 계약을 맺었고 올해 5월에는 말레이시아와 18대, 1조2000억원 규모 수출 계약을 맺었습니다.
FA-50 경공격기가 무엇일까요. 공군 항공기는 조종 연습을 하는 훈련기, 공중전을 하는 전투기, 공중에서 지상에 있는 적 전차나 진지를 공격하는 공격기, 물자를 나르는 수송기 등이 있는데요. FA-50은 약간 경량급으로, 공중전과 지상 공격 겸용 무기입니다. 한국 공군은 주로 미국산 항공기를 수입해 왔는데요. 일부라도 국산화하려고 2005년에 T-50이라는 훈련기를 개발했고 같은 모델에 레이더와 미사일 등을 탑재한 게 FA-50 경공격기입니다. 경남 사천에 본사를 둔 한국항공우주(KAI)라는 업체가 만들죠.
한국 공군과 업체는 T-50을 한국군 용도뿐 아니라 수출도 추진했습니다. 외국 입찰에서 번번이 탈락했죠. T-50은 마하 1.5 초음속 비행기인데요. 훈련기로 사용하기에는 사양이 너무 높고 가격이 비쌌죠. 외국 공군 관계자들은 "자동차 운전을 연습하는데 최고급 페라리는 필요 없다"고 타박했습니다.
T-50을 FA-50으로 개조하자 달라졌습니다. 최근 폴란드와 말레이시아 계약에 앞서 필리핀, 타이, 이라크, 인도네시아에 잇달아 수출이 성사됐죠. 아르헨티나에는 레이더 사양 문제로 막판에 불발됐고요. 이밖에도 이집트를 비롯해 수출 교섭이 진행 중인 나라가 여럿 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산 경공격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투기 성능만 보면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만드는 F-35가 세계 최고입니다. 상대편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숨겨주기를 비롯해 온갖 최신 기능을 갖췄습니다. 사양이 높으면 가격이 비싸겠죠. 한 대 1000억원이 넘어 웬만한 나라는 사지 못합니다. 최첨단 무기라고 무조건 쓸모가 많지도 않습니다.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적국과 전면 전쟁을 하기보다는, 반군을 소탕하거나 기본적인 무력을 유지함으로써 적이 넘보지 못하도록 억제만 해도 되는 나라가 지구상에 훨씬 많죠. FA-50은 이런 수요를 만족시키고 가격은 450억원 가량으로 F-35 절반 이하입니다.
최첨단이 아닌 중간급 군용기 시장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탈리아의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사가 선두주자였죠.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까요? 우수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 가벼운 무게 3박자를 맞춰줄 기술력이 중요합니다. 한국항공우주는 T-50과 FA-50을 개발할 때 미국 록히드 마틴사에서 기술 이전을 받았는데요. 한국 엔지니어들이 정교한 손기술과 '빨리빨리' 정신을 짧은 시간에 발휘했습니다. '스승'을 놀라게 했죠.
한국은 T-50, FA-50 개발 단계에서 세계 항공 후발국 수요를 잘 고려하고, 엔지니어들이 기술력을 발휘해 제품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지난 5월18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공군 제1전투비행단을 방문해 우리 공군으로부터 FA-50 비행교육을 받고 있는 폴란드 공군 조종사들 및 부대 관계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뉴시스 사진)
수출 마케팅을 위해 정부와 군, 업체가 협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 공군은 FA-50 수출 지원 차원에서 폴란드 공군 조종사를 데려다 조종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T-50 기종 공군 곡예비행팀 블랙 이글스는 폴란드나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 마케팅 수요가 있는 나라를 골라서 붐 조성 시범 비행을 해줍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총력 마케팅을 하는 거죠.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는 분위기가 반대였습니다. 당국이 수시로 방산 비리 수사를 벌였습니다.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황기철 예비역 해군 대장처럼 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 몇 해 고생하다가 무죄가 확정되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업계와 정부가 협력하긴커녕 관계자들끼리 밥 먹기를 피할 정도로 공기가 얼어붙었죠.
문재인정부는 방산 수출을 국정 과제로 정했습니다. 청와대 안보실에 방위산업담당관(최용선씨)을 신설하고 정부와 군, 업체 사이에 컨트롤타워 구실을 맡겼습니다. 왕정홍,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다파 고(방사청이 간다)'라는 업체 방문 프로그램을 70회 이상 실시하며 정부와 업체 사이를 좁혔습니다. 윤석열정부는 국방부와 대통령실 안보실에 방산 수출 지원 부서와 담당자를 두었습니다. 총력 지원 체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이죠.
수출 마케팅 때 유의할 점도 있습니다. 6개국 업체가 경쟁했던 말레이시아 입찰에서 한국 FA-50이 성공한 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지정학적 이슈와 무관하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시아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식민지로 삼지 않았고 지금도 안보 갈등이 없습니다. 한국은 한국전쟁 뒤 평화상태를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K문화 등으로 한국 이미지가 좋아진 점을 외국 언론이 주목한 겁니다.
동남아, 중동, 동유럽과 북유럽, 남미 등 여러 지역에서 FA-50을 비롯해 한국 방산 제품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K방산 수출이 호조를 보이자 일부 논객은 한국이 "자유 진영의 무기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념으로 진영을 갈라치는 전략을 펴면 접근할 시장이 좁아집니다. 개방형 통상국가답게 기술력과 '평화 국가' 이미지를 살려 나가는 게 유리할 겁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