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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우리들의 학교, 교사와 선생님
입력 : 2023-08-18 오전 6:00:00
두께가 근 1cm는 넘는 굵직한 자를 늘 갖고 수업에 들어오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과목은 영어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 부산의 한 중학교였습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총칼로 정권을 잡아 군인들이 득세하던 시절 탓인지 학교도 무지막지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40대 초중반은 됐을까요. 교사의 그날 기분에 따라 중학생들은 매타작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교사는 묵직한 플라스틱 자를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칼춤을 췄습니다. 기억이 또렷합니다. ‘There is a book.' 교사는 녹색 출석부를 펼쳤습니다. 이름도 아니고 번호를 부릅니다. 칠판 위에 분필로 쓴 영어 문구를 해석해 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학교
 
걸상에서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책이 있다.” 갑자기 묵직한 자가 '이대호 풀스윙급'으로 뺨에 날아듭니다. 그것도 한쪽만 아니고 양쪽으로 말이죠. 양 뺨은 벌겋게 부어 터졌습니다. 다음 번호가 불렸습니다. 그 번호는 한쪽 뺨만 연거푸 3대를 맞았습니다.
 
몇 명이 잇따라 줘 터지고 나서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책이 있다” 그제서야 폭력의 향연은 마무리됩니다. 그냥 그게 끝이었습니다. 설명도 없었습니다. 당시는 학원도 없어서 왜 그게 정답인지는 고등학교 가서 알았습니다. 'There is + 명사‘의 경우 앞에 나오는 'There'는 유도부사라고 해서 한국어로 번역을 안 한다는 겁니다.
 
유도부사로 사용되는 'There'는 한국어로 해석 안한다는 것. 평생 안 잊어 버립니다. 매타작과 바꾼 소중한 영어학습입니다.
 
고등학교라고 다를까요. 이번 과목은 수학입니다. 교사는 관운장처럼 얼굴이 붉었습니다. 소주냄새가 늘 진동했습니다. 교재 뒤에 붙은 풀이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칠판에 적습니다. 다 쓰고 나면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습니다. 
 
한 친구가 궁금증이 생겼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교사는 가뜩이나 붉은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손목시계를 풉니다. 교실은 타이슨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사각의 링’으로 변했습니다.
 
학교는 이렇게 무자비한 곳이었습니다. 
 
교사와 선생님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7세, 여성 31.3세입니다. 초산 연령은 여성 32.6세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부모는 대략 40세 언저리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놓고 보면 현재 초등학교 부모들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중고교 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환경마다 다르겠지만 당시 '우리들의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학생들이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냅니다.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낳는 아이의 숫자)이 0.78명(2022년 기준)인 나라에서 자식은 얼마나 소중할까요. 
 
그런데 기억속의 학교는 그닥 좋지많은 않습니다. 교사는 여전히 불신의 대상입니다.   
 
지금 학교는 많이 변했습니다. 교실을 사각의 링으로 여기는 교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교대와 사범대만 나오면 선생 시켜주던 시절이 아닌, 임용고시를 보고 실력을 갖춘 교사들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서 배운 학생들이 아닙니다. 교양을 갖춘 양질의 '선생님'이 많다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왜 학부모들은 학교에 간 아이들을 불안해 할까요. 청소년기 당한 몇몇 교사에 대한 불신이 내면 밑바닥에서 불쑥 올라오는 게 아닐까요.   
 
물론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끝으로 치닫는 요즘. 내면 속 공포를 털어내고 교사에 아이를 아무 말없이 잠깐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도 되돌아보면 나쁜 교사보다 좋은 선생님이 많았던 것처럼요.
 
오승주 사회부장
오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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