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조선을 침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자마자 무리하게 전쟁에 나선 이유를 두고 여러 가설이 존재하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통일로 인해 할 일이 없어진 무사 계급과 논공행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이묘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외부에 있는 적을 공격해 이들의 불만을 달래고 일본 전체를 결속시키고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쳐들어왔다는 거죠.
우리도 이 방법에 상당히 익숙합니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 독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요긴하게 썼던 선전·선동이 있죠. 바로 '반공'입니다. '북한'과 '공산주의'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우리 국민의 분노가 군사 정권이 아닌 외부로 향하게 했습니다.
'공산주의'와 관련한 이념 논쟁은 지금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국방부가 청사 앞과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흉상을 이전하고자 검토하고 있죠. 광주시가 지역 출신 중국 귀화 작곡가 정율성의 역사 공원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정부가 우리 사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을 계기로 '교권 침해' 문제에 대한 교육계의 불만과 분노가 터져 나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교사들은 6주째 국회 앞에 모여 '교권 보호'를 외치고 있죠.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익숙한 방식이 떠오릅니다. 앞서 설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사의 극단 선택 사건 이후 첫 행보로 지난달 2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간담회를 가지고, 이 자리에서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재정비하겠다고 강조했죠. 지난 한 달간 계속된 각종 간담회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 발표에서도 같은 말이 반복됐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의 적으로 만들어 이에 대한 공격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교권 침해' 문제의 본질은 '학생인권조례'가 아닙니다. 아동학대 신고만으로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업무에서 배제될 뿐만 아니라 직위 해제까지 가능했던 제도적 결함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충되는 게 아닙니다. 함께 보호돼야 할 기본적인 가치입니다. 우리 국민은 '학생인권조례'를 적으로 만들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휘둘릴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정부는 '교권 침해' 문제의 제대로 된 원인을 다시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사건 이후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꼽으면서 '교권'의 적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사진은 이 부총리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사진 = 장성환 기자)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