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나도 사장이었지."
쿠쿠서비스센터 도봉점 사장님이었던 쿠쿠대리점주협의회 회장 A씨는 지난 3월 말 20여년간 일궜던 터전을 잃었습니다. 본사와 가맹계약이 해지됐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고무줄을 만드는 지인의 회사에서 취직해 잡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물건을 운반하고 심부름하는 일로 최저임금을 받습니다.
A씨는 청춘을 바친 직장을 잃게 됐지만 그 동안 본사는 쑥쑥 컸습니다. 쿠쿠전자는 2017년 렌털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쿠쿠홈시스(284740)를 신설하고, 가전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쿠쿠전자를 설립했으며
쿠쿠홀딩스(192400)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회사 성장에 기여했는데 돌아온 건 '계약해지'"
A씨가 쿠쿠서비스센터 운영을 시작했던 2003년은 쿠쿠전자가 성광전자에서 사명을 바꾼 지 1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2003년 김포센터를 연 A씨는 5년여 뒤 도봉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회사에서 서비스뿐 아니라 판매까지 겸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대로변의 30평이 넘는 자리 마련도 요구했다고 합니다. 도봉점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1년 가까이는 계속 적자였습니다. 직원을 두고 경영했을 때도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인건비 수준만 건질 뿐 수익을 남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2010년 쿠쿠가 정수기 사업을 시작하자, 회사는 A씨를 비롯한 각 지역 센터에 정수기 판매와 함께 서비스를 맡겼습니다. A씨는 "당장 회사가 정수기 판매를 위한 서비스나 판로 조직이 마땅치 않으니 전국의 서비스센터에 지역별로 그 권한(정수기 서비스)을 위임해줬다"면서 "그때만 해도 회사와 센터가 서로 많은 의지를 했고, 상생하는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올해 3월 계약이 해지된 한 점포 전경. (사진=쿠쿠점주협의회)
회사는 정수기(재고)를 쌓아둘 창고도 요구했습니다. 정수기 수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창고대여비는 월 50만원. 이 역시 A씨가 부담해야 했습니다. 쿠쿠의 이름값 때문인지 정수기 사업은 2~3년 새 궤도에 올랐습니다. 서비스와 필터 교체 매출로 정수기 서비스를 위한 투자비용을 회수할 즈음, 회사는 정수기 서비스를 본사로 가져갔습니다. 본사 차원에서 정수기 서비스를 전담한다고 했습니다.
A씨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회사와 맺은 계약서 상에는 서비스 지역만 기재됐을 뿐 서비스 내용과 범위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리점주와 본사 간 계약서에는 대리점주에게 불리한 내용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A씨는 "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가져갈 줄 몰랐지" 라며 씁쓸해 했습니다.
"올초 줄줄이 계약해지 통보…이전엔 선례 없어"
A씨와 같이 오랜 업력을 지닌 쿠쿠전자 대리점들은 고객과 만나는 최전선에서 밥솥이나 정수기 등과 관련한 서비스를 도맡으며 신사업을 개척하고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짧게는 15년, 길게는 25년까지 쿠쿠대리점을 운영했던 11곳의 점주들은 회사의 계약해지 앞에 힘 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쿠쿠의 대리점 계약 해지 이유가 '쿠쿠대리점주 협의회 활동'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쿠쿠점주협의회가 결성된 것은 2020년입니다. 당시 본사가 홈케어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자 대리점주들은 이에 반발하며 대리점주협의회를 꾸려 이에 대응했습니다. 본사가 부품 마진율을 줄이면서 안 그래도 수익이 악화된 상황이어서 홈케어 서비스를 위해 대리점 자체 인력을 스스로 고용하고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고 대리점주들은 설명합니다.
지난 3월 계약해지된 점포 전경. (사진=쿠쿠점주협의회)
이에 본사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회사 관계자의 폭언과 협박이 있었다는 게 언론에 보도되고 회자되자, 회사가 보복으로 대리점주들과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습니다. A씨는 쿠쿠점주협의회 활동에 대해 "서로 상생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합니다. "회사도, 우리도 서로 요구를 들어주면서 윈윈하며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는데… 우리가 (그동안 회사에서 주는 일을) 주는 대로 다 받으면서 따라오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니까 불만이었나 봐요."
58명이 나섰지만 본사의 회유와 압박 등으로 다수가 탈퇴하고 9월 현재 남은 건 20명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데 A씨를 비롯한 11곳의 점주들이 올해 초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전엔 매출 악화나 개인 사정 등으로 대리점을 그만두는 사례가 몇 있었을 뿐 회사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한 곳은 전무했다고 대리점주들은 설명합니다.
계약이 해지된 11곳의 대리점주들은 지난 2월 울산지방법원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대리점주 지위를 유지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심문기일이 지연됐고, 계약기간인 3월31일이 지난 4월이 돼서야 기각 판결이 나왔습니다.
A씨는 "심문기일이 3월 중순께 잡혔지만 재판부의 기피신청 등의 사정으로 심문기일이 연기되며 3월 말에 가까워서야 심문이 진행됐고, 그렇게 계약날짜를 넘겨버렸다"면서 "기한 내에 지위를 보전해달라는 내용인데, 계약기간이 만료돼버려 매장을 정리해야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회사의 갱신 거절이 점주협의회 결성에 대한 보복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회사의 갱신거절이 문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정위 신고했지만 '하세월'…회사는 소송비 청구
회사의 계약 해지 통보로 인해 이들은 남은 임대기간 임대료를 지불하거나, 회사의 요구로 수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놓고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가처분신청 기각으로 인해 채무자(회사)측의 소송비도 일부 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조만간 청구서를 통해 금액이 확인되면 점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야 합니다. 업계에서는 가처분신청에서 채무자가 채권자에 소송비를 청구하는 것을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처분신청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쿠쿠본사를 불공정행위로 신고했습니다. 2020년도 약관분쟁조정협의회 신청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공정위에서 이에 대해 불공정행위로 판단할 경우 향후에 민사소송에서 근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으나 공정위의 판단이 적어도 1~3년 가량 걸린다는 점에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쿠전자 양산본사 전경.(사진=쿠쿠전자)
계약 해지로 점포를 정리한 대리점주들은 남은 9곳에 대한 걱정이 큰 상황입니다. A씨는 "우리가 당하다보니 그들도 조마조마할 것"이라며 "나머지 아홉군데가 내년에 해지통보를 받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정종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자문위원장은 "쿠쿠의 사례는 가맹사업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대표적인 불공정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창업주가 있을 때는 사업을 도왔던 이들(대리점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신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세 경영의 폐해를 보여주는 여러 기업들 중 하나로 생각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회사 측은 서비스센터와 쿠쿠 간의 거래에 불공정 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종결난 사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상호 합의 된 약관을 충실히 이행해 내부 객관적 평가 기준에 의해 절차대로 진행된 계약 종료의 건"이라면서 "재판 진행과는 별개로 상생의 의지가 있는 센터와는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거쳐 상생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