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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정치
입력 : 2023-09-20 오전 10:12:24
단식 19일차인 이재명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프랑스)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지난 2018년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주인공 고애리(김태리)가 한 대사입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20세기 초 한성,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병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입니다.
 
사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낭만이라는 단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는 '낭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2023년,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라는 인터넷 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폭우 속 출근길과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귀성길, 결혼식 뒤풀이 등의 당시 장면들로 그 시기를 추억합니다. 사회 풍자 성격이 담긴 'SNL 코리아'에도 X세대의 풍경을 소재로 삼아 당시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놓고 '낭만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노키즈존(어린이 제한 구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놓고 '낭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시기를 그리워하며 낭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건, 지금이 '갈등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갈등의 시대를 가장 앞에서 이끌어 가고 있는 건 정치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다가 건강 상태 이상으로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단식 19일 만에 벌어진 일인데요. 정부·여당에서는 아무도 찾은 적도 없고, 병문안 계획도 없습니다. 대신 '조롱'만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신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를 사실상 '잡범' 취급했습니다. 
 
여당은 집권 정당으로 국정운영의 책임이 무한합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권 갈등의 책임이 여당에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갈등은 여야가 함께 만들어왔으니까요. 하지만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1노 3김 시대의 4당 체제가 있었습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 이후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집권당은 과반 의석을 얻지 못했고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여소야대 국면인 13대 국회에서 법안처리 실적은 81%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야당 동의없이 법안 처리가 불가했는데, 정당 간의 협상이 가능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서로가 내주고 받고 하는 협상과 정치,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이 시기가 정치의 낭만을 찾을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 대사대로 한다면 '작금은 낭만을 그리워하는 시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갈등의 시대'로 불리는 지금과 비교해 그 시기를 추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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