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현정은 회장에 대한 적대적 지분이 늘어나는 속에 현대그룹이 핵심 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고 나섰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사모펀드의 주주제안에 부합하는 명분이 될 동시에 외부주주 의결권 지분을 희석시켜 경영권 방어수단도 됩니다. 현 회장에게 더 확실한 지배력 방어법은 현대엘리베이터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 전환 용도의 현물출자 및 자사주 의결권 부활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지주회사 전환 시 과세이연특례도 연장된 상태인데, 현 회장은 모친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미리 증여받아 특례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경영권 해결 단초 될 자사주
25일 현대엘리베이터 등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22일 자사주 추가 매입을 위한 신탁계약을 공시했습니다. 계약기간은 2024년 3월21일까지고 계약금은 500억원입니다. 회사가 밝힌 목적은 주주환원 및 주가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입니다. 이는 최근 KCGI자산운용이 회사에 주주서한을 보내 현 회장의 사내이사 적격성 재검토와 함께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요구한 것에 답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또한 자사주 매입과 함께 소각 계획을 따로 밝히지 않아 적대주주에 비해 현 회장 등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측면도 부각됩니다. 이번 신탁계약 전 자사주는 306만4134주, 7.8% 지분비율이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들어 69만459주를 샀다가 기존 주식과 더불어 총 172만2806주를 소각한 바 있습니다. 동시에 신탁계약을 통한 신규 취득을 병행해 자사주가 7.8%나 남게 됐습니다. 22일 종가 4만3250원 기준으로 500억원을 모두 매입자금에 쓴다면 합산 자사주는 총 422만403주가 돼 지분으로는 10.7%에 이릅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현 회장 가족이 보유한 현대홀딩스컴퍼니가 19.25%, 현 회장이 5.74% 등 특수관계인 모두 27.77%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외부주주는 상반기 말 기준 쉰들러가 15.83%(8월30일 기준 13.19%), 국민연금 5.42%, 오비스 인베스트먼트 6.9%, KCGI가 직접 밝힌 2% 이상(8월 기준) 지분이 있습니다. 이 중 쉰들러와 KCGI는 현 회장에게 적대적입니다. 오비스는 경영에 관한 특별한 의견을 내비친 바 없으나 주가부양에 도움이 된다면 사모펀드 측에 가담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쉰들러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 땐 현 회장 편을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이사 선임이나 보수, 배당 등 경영의사엔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현 회장의 지배력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사주는 현 회장에게 버릴 수 없는 카드입니다. 의결권 없는 상태로도 자사주는 불확실한 외부주주 지분을 희석시켜줍니다. 나아가 의결권 부활로도 이어진다면 지배력을 확실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이에 시장에선 줄곧 지주 전환 시나리오가 거론돼 왔습니다. 자사주 의결권 부활을 위해선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 지주전환 목적 시 현물출자로 인한 양도차익에 상당하는 금액에 대해 양도소득세 또는 법인세의 과세 이연 혜택을 이용하는 게 유리합니다. 한마디로 세금을 안 냅니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정한 해당 과세이연특례는 일몰 조항이었으나 정부가 거듭 연장해 최소 2026년까지 허용됩니다.
때 이른 주식 증여 왜?
그런데 이 세금 면제는 현물출자 주식 처분 시까지만 적용되는 시한부입니다. 처분하면 세금을 내야합니다. 처분엔 상속까지 포함됩니다. 이와 관련 현 회장이 지난달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5.74% 전량을 증여받은 게 눈에 띕니다. 경영권 지분 다툼이 한창인 와중에 증여세 부담을 무릅쓰고 정지작업을 서두른 것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현대엘리베이터가 지주 전환한다면 이후 주식을 상속받을 시 세법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며 또 “상속 주식이 남아 있으면 흔히 코리아디스카운트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에도 부정적인데 미리 증여해 해소한 효과가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회사가 주식가치 부양에 힘쓰고 있다는 가정 아래 가능한 해석입니다.
실제 현대엘리베이터는 물리적으로 확실한 주식가치 상향 효과가 있는 자사주 이익소각을 병행해왔습니다. 주식가치를 키워야 할 배경은 또한 지주전환 목적과 닿습니다. 지주전환하자면 모회사의 자산총액이 5000억원을 넘겨야 하는 게 하나의 법적 요건입니다. 그러자면 현대홀딩스컴퍼니 자산가치 중 가장 비중이 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가치를 키워야 합니다.
이 가운데 쉰들러는 최근 여러차례 장내매도를 통해 시장에 주가 하방압력을 넣고 있어 주목됩니다. 지난 상반기말 15.83%부터 8월30일까지 단기간에 2.64%나 팔았습니다. 이를 두고 블록딜이 아닌 장내매도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가는 연중 고점 수준에서 등락 중입니다. 지난달 23일 장중 5만400원을 찍었던 데 비해서는 이달 22일 종가 4만3250원까지 내려왔습니다. KCGI까지 경영권 분쟁에 가세해 시장 내 주가향방에 대한 눈치싸움이 치열한 듯 보입니다.
한편, 현대홀딩스컴퍼니(분할 후 존속 투자회사)는 지난달 1일 현대네트워크(분할 사업회사)를 인적분할했습니다. 현 회장 일가가 보유하던 지분 그대로 분할돼 사업회사의 향방이 궁금증을 낳습니다. 사업회사의 자산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기업집단 지배회사 바로 밑에 위치해 총수일가 지분이 있는 비상장 자회사로서 관심을 모읍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