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남을 알기 위해 MBTI 검사가 대유행하더니 최근에는 학교생활기록부를 꺼내보는 것이 유행이 됐습니다. 생기부 속에는 단순한 추억을 넘어 무거운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관심을 갖게 된 건 한 홍보담당자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학생기록부를 보다보면 사람마다 관통하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면서 그것이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추억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어떤 키워드를 담은 사람일까 생각하며 조회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절차로 케케묵은 생기부를 손쉽게 열어볼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정부24와 무인민원, 창구 등을 통해 발급된 생기부는 총 285만7689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행을 타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발급 건수가 6.1배 급증했습니다.
생기부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적과 수상내역, 활동, 교생활 전반이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에는 담임교사가 문장으로 기술한 자신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생기부를 열어보니 그 시절 교실의 장면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릴적 제 모습이 끊임없이 필름처럼 상영됐습니다. 잊어버렸던 기억도 생기부는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어를 두려워하는 제가 그 시절 영어회화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회화에 능하다는 칭찬도 받고 있었습니다.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던 저는 별 걱정 없이 생기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생기부 속 칭찬이 오히려 지금의 저를 반성하게 했습니다. 꾸짖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엇비슷한 느낌을 스스로 느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창의적이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참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학우들의 어려운 사정을 두루두루 살펴 도와주는 너그러운 심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지금의 저는 어떨까요? 지금의 저를 보고도 그 시절 담임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똑같이 해주실까요?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꽤 오랫동안 동떨어져 있었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그리고 저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마무리도 깔끔하고요. 지금은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저를 가장 아프게 했던 부분은 '장래의 목표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였습니다. 저는 큰 꿈과 포부를 가진,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늘 꿈을 이야기하고 늘 꿈을 꿨습니다. 자신감이 넘쳐흘렀기에 뜨거운 피도 흘렀던 것 같습니다. 다시 그렇게 꿈을 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아팠던 것 같습니다.
왜 사람들이 생기부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소중한 추억에 더해진 은사님의 따뜻한 지지와 대비되는 현실이 자성을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그 시절 온도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