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게 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22일 이종명·박만규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3억원 상당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고 국가가 이들에게 각 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불법 구금 당하고 폭행, 협박을 받고 동료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 받은 사실과 이후에도 감시·사찰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원고들이 육체·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경험칙상 인정돼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이유도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소멸시효 완성 항변엔 "책임 면하려는 것 용납 어려워"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항변에 대해서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에도 또다시 소멸시효 주장을 내세워 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고 질책했습니다.
이들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군 복무 중 육군 보안사령부 소속 군인들로부터 동료 학생들에 대한 감시와 사상·동향 보고 등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5월 소송을 냈습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해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습니다.
또 이들 목사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으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결정통지서를 법원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진화위 권고사항 이행해주길"…항소 여부도 검토
박 목사는 이날 선고 직후 법원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줘서 참으로 다행"이라면서도 "피해자들이 일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게 아니라 국가가 보상이나 치유 등 진화위 권고사항을 이행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과연 법원에서 인정한 9000만원이 '국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금액인지, 피해가 회복되는 금액인지 당사자와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 등이 22일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수민 기자)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