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12살 어린이가 80대 할머니와 함께 살아나가는 이야기였어요.
12살 어린이는 까만 가방을 들고 소주병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소주병 3병을 모으면 계란 1개를 살 수 있고, 6병을 모으면 할머니와 나란히 계란 하나씩 먹을 수 있다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병을 모으곤 했습니다.
공병 하나 줍겠다고 바닷가 해수욕장을 뒤지고 다니는 바람에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와 점퍼가 망가졌다며 이제 공병 줍지 말라는 할머니의 핀잔을 듣고는 어린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습니다. 손자를 나무랐던 할머니는 손자에게 계란을 먹이기 위해 공병을 주으러 다닙니다.
22일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골에서 열린 '자비실천, 에너지 취약계층 연탄지원' 행사에서 봉사자들이 연탄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동행 그 후'라는 코너를 통해 어린이와 할머니가 프로그램 방영 후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게 됐는지를 보여줬습니다. 프로그램에 협찬하는 기업들의 물건이 줄줄이 들어왔어요. 침대, 이불, 김치냉장고, 의료기기 등등 이들은 각 물건을 만져보고 사용했습니다. 카메라는 새로운 기구를 접하는 이들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습니다. 아이는 처음보는 새로운 물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김치를 허리 굽혀서 넣어야 했는데 이건 정말 편해요" 라며 스탠딩 김치냉장고의 편리함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어요. 반찬 봉사자도 소개됐습니다. 아이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더 이상 공병도 줍지 않습니다. 아이의 교육을 책임져 줄 교육봉사자도 나타났습니다. 학원 운영자 같았어요.
생활능력이 없는 할머니, 경제적 능력이 있는 어른의 보호가 절실한 어린이만으로 이뤄진 이 세대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새로운 가구, 가전제품, 가재도구, 운동화, 이불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업의 일시적인 도움도 좋지만 기업이나 지역 장학재단과 연계해 체계적인 지원과 보살핌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해이해진 정신상태를 두고 문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와 전기요금,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부모에게 보호받고, 행복하게 자라나야 할 어린이라는 사실도요. 내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모든 면에서 다들 웬만큼 풍족해졌다고만 생각했어요.
편협하고, 안일했던 내 생각과 시야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좀 더 넓게 깊이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그저 위만 바라보면서 '내가 제일 불행해'라고 푸념했던 과거도 부끄럽습니다. 내 주머니만 채우고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을지, 내가 사회로 받은 혜택을 어떻게 다시 베풀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그들과 동행하는 방법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