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여기 앉아요.", "아가씨 참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런 대화를 시도하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가씨라는 단어보다는 학생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말이 되면서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집니다. 언젠가는 누군가 저를 '아줌마'로 부르게 될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팍 나빠지는 것을 보니 저는 아직 나이 들 준비가 안 된 모양입니다.
학생이라는 풋내에서 아가씨라는 향기를 거쳐 아줌마로 호칭이 교체되겠지요. 그 다음은 '할머니'입니다. 돌아보니 승진과 연봉, 부의 축적을 놓고 미래를 그려본 적은 많았지만 정작 변화하는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생각엔 공백만 가득했습니다.
100세 인생을 놓고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학생이라는 시간은 찰나였습니다. 아가씨도 그에 못지않게 참 짧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긴 시간을 아줌마로 살아가게 될 거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은 할머니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그에 맞는 대비가 필요하겠지요. 새 명칭에 정을 주지 못하고 미워하고 원망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불행할까요. 내가 꿈꾸는 아줌마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원하는 할머니상은 어떤지 세세하게 고민을 해둬야겠습니다.
뭉뚱그려 생각해본다면, 일단 여유가 넘치는 숙련자이고 싶습니다. 일도, 삶도요. 자기효능감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놓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을 가꾸며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성공만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들이 켜켜이 쌓여야 단단한 산물이 만들어지겠지요.
남은 몰라도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어딘가 껄끄럽고 찜찜한 언행을 일삼았다면 스스로가 괜찮고 사랑스러울 리 만무합니다. 반대로 떳떳하게 깔끔한 공과 사를 만들어냈다면 스스로가 대견하겠지요.
저는 꽤 괜찮은 아줌마, 할머니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익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