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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금융, 경제적 약자 안전망이다"
입력 : 2023-12-04 오후 2:47:43
1968년 12월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서봉균씨는 제6대 농협중앙회장에 취임했다. 임명권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서 회장에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상호’간에 자금을 융통해서 농협이 농사자금을 대줄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서 회장은 부임과 동시에 집무실 흑판에 ‘상호(相互)’라는 글자를 써 놓고 금융상품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만 해도 농민들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농촌에는 장리(長利)쌀과 같은 고리채가 성행했다. 농민들이 이 고리채의 덫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웠다. 40~50%의 이자와 원금을 추수 때 갚아야 했고 제때 상환이 안 되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일쑤였다. 1969년 7월부터 읍면 단위농협을 중심으로 상호금융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농촌에 만연했던 고리채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농민들도 저리(低利)로 돈을 빌리게 된다. 통계를 보면 1971년 70%에 달했던 농촌 고리채가 1979년 37%로 대폭 낮아졌다. 상호금융 덕분이었다. 상호금융은 조합원의 돈을 예탁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서민 금융제도다. 서로서로 혜택을 주고받는다 하여 호혜(互惠)금융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는 농협을 비롯해 신협,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에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상호금융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출건전성이 악화된 결과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올해 6월 말 기준 연체율이 2.8%로 전년 말 대비 두배 이상 늘었다. 악성 대출인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91%로 전년 말 대비 1.07%나 상승했다. 새마을금고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체 연체율이 5.41%에 이르고 일부 지역은 신용전반에 문제가 생겨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고금리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다보니 연체율이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호금융은 경제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입지가 흔들리면 농민, 영세자영업자 등이 맨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 필자는 일선에서 직접 상호금융을 취급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기관 스스로 적정한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손충당금에 대한 적립 비율 역시 충분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대출 이외의 외부 투자는 최대한 자제하고 필요하다면 국공채 등 우량채권에 한정해야 한다. 대출 역시 한쪽에 편중되지 않도록 적정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셋째, 이번 새마을금고에서 보듯이 금융기관의 잘못된 조직 운영과 일부 임직원의 도덕적해이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대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통제와 감사기능의 확대, 그리고 임직원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이 지속적으로 뒤따를 필요가 있다.
 
금융은 신용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같다. 상호금융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돈의 회전이 멈춘다. 그리고 그 폐해는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경제적 약자에게 쏠려 간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를 오래 겪으면서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구조가 커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서민 금융제도인 상호금융이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적 약자들이 쉽게 의지하고 융통(融通)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한다.
 
송영조 금정농협 조합장·농협중앙회 이사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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