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지난 13년여간 국내증시에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상장한 기업 중 76%가 매출액 추정치보다 못한 실제 매출을 벌어들였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스팩상장 기업의 합리적인 미래 실적 추정을 위해 공시 강화 등 제도 개선에 나섰습니다.
7일 금감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3년 8월 중 상장한 스팩상장 기업은 139개입니다. 이들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1차년도~5차년도) 현황을 분석한 결과 평균 매출액 추정치는 571억원이나 실제치는 469억원으로 추정치에 비해 17.8% 미달했고 평균 영업이익 추정치의 경우 106억원이나 실제치는 44억원으로 58.7% 미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스팩상장 기업의 가치는 미래 영업실적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수익가치와 최근 재무상태표의 순자산에서 조정 항목을 가감한 자산가치를 가중평균해 산정하는데요. 자산가치는 재무상태표에 기반하므로 객관적으로 산정되나 수익가치는 추정된 미래 영업실적에 따라 크게 변동됩니다.
매출액, 영업이익 추정 초과·미달 스팩상장 기업 현황 (자료=금융감독원)
분석대상 중 추정 매출액 미달 기업의 비중은 평균 76.0%, 영업이익 미달 기업은 평균 84.1%로 나타났습니다. 추정 연차가 높아질수록 미달 기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요. 매출액 미달 기업은 1차년도에 64.7%지만 5차년도엔 85.4%로, 영업이익 미달 기업은 1차년도에 70.5%지만 5차년도엔 91.7%로 집계됐습니다.
금감원은 장래 영업환경 등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해 영업실적을 추정한 사례가 존재했다고 밝혔습니다. 바이오 기업 A는 치료제 개발을 통해 20XX년 1430억원의 매출 발생을 추정했으나 임상시험 등의 지연으로 매출 발생 예정일이 1년 이상 지났음에도 매출이 미발생했습니다.
콘텐츠 기업 B는 수주가 진행 중인 모든 건에서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가정해 20XX년 한 사업부 매출액이 346억원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최종적으로 수주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는 등 실제 매출액은 추정치 1/10인 35억원 수준을 거뒀습니다.
코스메틱 기업 C는 20XX년 신규 사업에 진출 에정이라며 첫해에 7억원, 다음 해 50억원의 매출 발생을 추정했으나 매출 발생 시기가 1년 지연됐고 첫해 4억원, 다음 해 33억원에 불과했습니다.
금감원은 "증권사 등 스폰서와 외부평가법인(회계법인)은 기업가치 고평가를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합병 성공 및 업무 수임을 우선하는 등 그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 보호 노력이 상당히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기업가치가 고평가되면 스팩 투자자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이 적용되고 결국 투자자 피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금감원이 한 기업의 실제 영업실적에 근거한 합병비율을 재산정한 사례를 살펴보면 영업이익 실제치는 추정치의 43.0% 수준에 불과했는데요. 실제치 기준 합병가액을 동일한 방법으로 다시 계산한 결과 해당 기업의 수익가치와 합병가액은 기존에 비해 82.5% 및 76.2% 감소했습니다.
스팩 주주에게 배정되는 합병신주는 기존 스팩 1주당 0.14주에서 스팩 1주당 0.60주로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스팩 일반투자자의 합병 후 지분율은 30%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금감원은 스팩상장 기업의 해당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 1분기 기업공시서식 작성 기준을 개정할 방침입니다. 회계법인의 스팩상장 기업 외부평가 이력과 외부평가업무 외 타업무 수임내역 등을 증권신고서 공시 항목으로 추가하고 스팩상장 기업의 영업실적 사후정보(예측치와 실적치 차이, 차이발생 사유 등)가 충실히 공시되도록 작성 양식을 개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스팩 투자자는 회계법인의 전문성과 신뢰성, 객관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 안에 상대가치 활용도를 제고할 계획입니다. 상대가치란 유사 기업의 재무지표(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등)와 주가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산출한 가치입니다. 현금흐름할인법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대가치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해당 제도 개선으로 투자자는 유사 기업과의 기업가치를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으며 기업가치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죠.
앞서 금감원은 외부평가 합리성 제고를 위한 노력에 나섰는데요. 금감원은 지난 6일 회계법인과의 실무간담회를 통해 미래실적 과다추정 사례를 전파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회계법인은 기업가치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등 스팩 투자자 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나 고객 유치 등을 위해 외부평가를 관대화하는 등 투자자와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회계법인 자체적으로 엄격한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해 이해상충을 적절히 관리하는 등 평가 업무의 객관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금감원은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 개정, 상대가치 비교공시 활성화 등 제도개선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며 또한 미래 영업실적 추정의 근거가 충분히 기재됐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보는 등 심사를 강화하겠다"며 "향후에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정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