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을 주제로 한 영화 ‘서울의 봄’ 돌풍이 매섭습니다. 개봉 한달도 안 된 27일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1000만은 쉽게 넘어설 기세입니다. 넷플릭스 등 스마트폰으로 편히 볼수 있는 OTT(Over The Top) 매체가 대세인 마당에 사람들은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왜 바람이 불었을까요. 단순히 군인들의 대결이 흥미롭거나 재미있어서만은 아닐겁니다. ‘유신’이라는 체제로 ‘영원한 대통령’을 할 것 같았던 국가 최고 권력자가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발생한 절대권력의 공백기. 군내 사조직을 키운 조폭같은 정치군인 무리들이 ‘국가를 때려’(쿠데타 : 국가에 대한 일격 강타) 나라를 불법으로 집어 삼킨 스토리.
소설같은 영화였으면 굳이
‘그냥 소설같은 영화’였으면 사람들은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44년전 우리 역사에 실제했던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발걸음을 극장으로 이끌었을 겁니다.
특히 그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은 20대와 30대의 관심이 크네요. CJCGV가 1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의봄’ 관객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 △30대 29.9% △20대 26.2% △40대 23% △50대 16.9% △10대 4%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20대와 30대가 전체 관람객의 56.1%입니다. 10명 중 6명 정도입니다. 그 당시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40대까지 더하면 전체 관람객의 80%에 육박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방관자적인 태도로 외면했는 지 모릅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12·12 군사반란과 이어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일련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 ‘지천명’이 가까워져서야 였습니다.
제대로 찬찬히 뜯어보게 된 것은 유튜브 덕분이라고 할까요.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영화에서처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와 육군본부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2·12 군사반란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6개월 뒤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과 삼청교육대, 녹화사업 등 대한민국에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다른 영화도 역주행하길
기왕 ‘서울의 봄’을 보신 분들은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 변호인, 1987 등도 역주행하시기를 권합니다. 아직도 유튜브에 있는 드라마 ‘제5공화국’도 찾아보시는 것도 좋구요.
전두환과 노태우는 2021년에 사망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눠줬던 친구사이라 그럴까요. 노태우가 세상을 뜬 지 한 달만에 전두환도 부고를 알렸습니다. 나라를 들어먹었던 ‘천하의 전두환’은 연희동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많은 이들은 종종 “전두환 때 살기 좋았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김영삼 정부 시절 재판에 의해 ‘국가 전복’과 ‘내란’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반란 수괴’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소리 좀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존경하려면 마음속으로 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반란군은 크게 보면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30·33단(현재 제 1경비단), 1·3·5공수여단과 보안사(현 국군기무사령부), 9사단, 20사단(해체)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국방부나 이들 부대가 '반란군 가담'에 대해 ‘사죄’했다는 공식 표현이 없습니다.
사회부장 오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