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아침 기온이 체감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한파 속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혹한에도 유체투지 행진을 벌이는 등 국회에 특별법 처리를 요구했지만, 지난 21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상정은 결국 불발됐습니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 추위를 막기 위해 여러 겹 비닐을 덧댄 천막에서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1년이 훌쩍 넘도록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고 이주영씨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정민씨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 국회에서 국민의 삶이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며 “유가족들이 얼마나 더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절박한 절규의 답을 얻을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안창현 기자)
이 위원장은 “28일 예정된 본회의에는 쌍특검 상정 얘기도 있고 자칫 특별법도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길 바랐다”며 “또 특별법 통과 이후에도 원활한 진상규명을 위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국회에서 이런 점들을 충분히 논의해주길 원했는데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유가족 임익철씨도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의 간절함과 절박한 마음을 담아 눈길 위에서 오체투지로 호소했지만 국회가 이를 외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참사 희생자 고 임종원씨 아버지인 그는 “지난 8일 정기국회 본회의를 넘기고 연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20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20일에는 예산안와 그동안 미뤄졌던 여러 민생법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될 거라 들어서 특별법도 여야가 합의해 통과될 수 있길 바랐지만 결국 또 미뤄졌다”고 말했습니다.
임씨는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되고 후속 조치들이 이뤄져야 유가족들도 노상 생활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그런데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보여준 태도는 유가족들에게 너무 절망적이다. 159명이 도심에서 사망한 이태원 참사부터가 이해되지 않는데, 이후에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정말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여당 외면이 가장 힘들어”
정부·여당이 처음부터 유가족들을 피해자로 대해준 적이 없고 진실을 호도하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이 넘도록 가장 힘들었던 게 정부와 여당의 외면이었다”며 “유가족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벽에 대고 호소하는 느낌이 들었다. 159명이 희생 당한 참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점이 가장 아팠다”고 호소했습니다.
눈이 내린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종교인들이 이태원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익철씨도 “유가족들은 오직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원하고 있다"며 "최근까지 국회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본회의가 있던 날에는 유가족 어머니들이 출근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법안 통과를 부탁하며 보라색 꽃다발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런 꽃다발을 내팽개치고 돌아서는 국회의원들도 있었다"며 "꽃 한 송이를 오물대하듯 하는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절망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 이정환씨 어머니 김모씨는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아직도 여러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자식들이 죽었는데 부모로서 최소한 왜 그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 그런 의문점을 해소하고자 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유가족들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특별법이 꼭 연내에는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위원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28일에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국회의장이 특검을 없애고 총선 이후 법안을 시행하는 중재안을 내놓았는데, 이것을 포함해 여야와 유가족들이 협의해서 어떻게든 연내에는 특별법이 처리돼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28일 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유가족들이 할 수 있는 건 모든 해서 배수진을 치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에 촉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