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을 비롯한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이 처음으로 공시되기 직전 줄줄이 이용료율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나마 인상된 요율도 외국계 증권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용료율 오픈하자 한투·삼성 등 인상 나서
(그래픽=뉴스토마토)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4일부터 개선된 시스템에 따라 증권사별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이 공시되고 있습니다. 요율 공개에 맞춰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을 올린 증권사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15일부터 예탁금 평균잔액 50만원 이상 고객에게 연 1.0%의 이용료율을 적용합니다. 기존 0.4%에서 0.6%포인트 올렸습니다. 50만원 이하도 동일하게 1.0%를 적용, 0.9%포인트를 올렸습니다. 삼성증권은 공시를 코 앞에 둔 같은 달 29일 기준 1개 분기 동안 예탁금 평균잔액이 50만원 이상인 고객에게 이용료율을 1.0%로 인상했습니다. 기존 0.4%에서 0.6%포인트 올린 겁니다.
투자자 예탁금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매매하기 위해 계좌에 넣어둔 돈, 즉 예수금입니다. 증권사는 이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예치합니다. 한국증권금융은 이 돈을 운용한 후에 그 수익을 다시 증권사에 돌려줍니다. 증권사는 한국증권금융에게서 받은 수익 중의 일부만 투자자에게 이용료로 지급합니다.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주는 예탁금 이자가 현저히 적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개 증권사가 2019~2022년 기간 중 투자자 예탁금으로 거둔 수익은 2조4670억원에 달합니다. 그중 투자자에게 지급한 이자는 5976억원으로 이자수익의 2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예탁금 이용료율이 과도하게 낮다는 지적이 국회와 시장에서 이어지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3월부터 금융투자협회, 주요 증권사와 함께 '예탁금 이용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10월엔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 산정 모범규준'을 제정해 증권사가 이에 따라 예탁금 이용료율 산정 결과를 협회에 보고하도록 했는데요. 이와 함께 이용료율 공시 시스템도 개선해 이에 따라 지난해 4분기 기준 증권사 예탁금 이용료율이 금융투자협회에 공시되고 있습니다.
공개 날짜 다 돼서 인상 '꼼수'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약속이나 한듯 예탁금 이용료율 공시 시행에 맞춰 이용료율을 올렸습니다. 이에 낮은 이용료율로 인해 비난받을 것을 우려해 정보 공개에 맞춰 인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외에 KB증권도 지난 2일 예탁금이 100만원 이상인 고객에게 0.03%포인트 올린 1.06%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하나증권은 8일부터 100만원 이상 0.35%에서 1.05%로, 다올투자증권은 100만원 이하 0.55%에서 1.05%로 높였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예탁금 잔액 100만원 이하는 2.0%의 이자를 주지만 100만원을 넘는 금액엔 0.7% 이자만 줍니다. 고객 90% 이상이 예탁금 규모가 100만원 이하여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기한을 정해두고 검토를 했다"며 "시점이 맞아떨어져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공시하니까 올리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증권사별로 날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지난해 말, 올해 초쯤 이용료율을 인상한 곳이 많다"며 "하루이틀 만에 이용료율 인상을 결정할 수는 없고, 지난해 꾸준히 검토해왔고 그 결과 인상에 나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키움증권은 이들보다 이른 지난해 10월8일에 이용료율을 0.25%에서 1.05%로 0.8%포인트 올렸습니다. 같은 달 12일 제정된 이용료율 모범규준에 한발 앞서 인상에 나선 것입니다.
외국계 증권사 3분의 1…여전히 낮아
이제 국내 증권사들의 이용료율은 0%대에 머물렀던 이전보단 올랐지만 외국계 증권사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6개 금융투자회사 중 예탁금 1000만원 기준 이용료율이 가장 높은 곳은 CGS CIMB증권으로 3.37%를 제공합니다.
이어 홍콩상하이증권(3.0%),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2.75%), JP모간증권(2.75%), 메릴린치증권(2.5%), BNP파리바증권(2.5%), 한국SG증권(2.5%), 노무라금융투자(2.0%) 등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2배를 웃돕니다. 국내 증권사 중에는 예탁금 1000만원 기준으로 2%대 이용료율을 매긴 곳은 없습니다. 제일 높은 신영증권도 1.1%에 불과합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은 있겠지만 각 증권사별 상황과 사업 전략에 따라서 자유롭게 책정한다"며 "전반적으로 이용료율을 높이고 있는 과정이고 점차 올라가는 추세니까 좀 더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