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 긍융정책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정부가 은행권을 옥죄어 자영업자의 이자 일부를 돌려주는 민생금융지원을 내놓은 데 이어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해주는 이른바 '신용사면'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정확한 채무 상환 능력과 연체 규모를 알기 어렵게 될수록 금융산업 근간인 신용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총선 앞두고 '선심성' 금융정책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21년 9월부터 이달까지 2000만원 이하 연체자 중 오는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한 이들에 대해 연체 기록을 삭제해 신용회복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최대 290만명이 대상이 될 전망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이태규 정책위 수석부의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사진=연합뉴스)
고금리·고물가 등으로 힘겨운 경제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민생을 가장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인데요. 성실히 상환한 차주들에게는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채무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은 김대중 정부 당시 IMF 직후인 1999년 12월, 박근혜 정부 초기 신용불량자를 구제해준 2013년, 문재인 정부였던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세 차례 있었습니다.
이번 조치는 2021년 사면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 연체에 대해 2021년 말까지 빚을 전액 상환한 개인과 개인사업자 230만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했습니다. 그 결과 개인 211만3000명, 개인사업자 16만8000명 등 약 228만명이 신용사면의 혜택을 봤으며 개인 기준 평균 24점의 신용점수(NICE 기준) 상승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도 대선을 앞두고 선거용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은행권은 연체기록 삭제로 인한 리스크 관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른바 '신용 사면'을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환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실제보다 정확한 연체액 파악이 어려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부실 위험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용사면 규모 측면에서도 너무 광범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최대 290만명이라는 규모도 따져보면 매우 크다"이라며 "경제활동 인구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데 과연 올바른 신용평가가 가능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상생금융 압박에 이어 대규모 신용사면 카드가 나온 시기도 문제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2021년은 코로나19 시기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미묘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은행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금융시장의 질서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은행권, 자영업 대출 관리 난항
가계대출이 연일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 부담을 안고있는 금융권은 신용 기록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10월말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43%로 전월말(0.39%) 대비 0.0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전년동월말(0.24%)과 비교하면 0.19%포인트 올랐습니다. 2022년 6월 0.20%까지 내려갔던 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차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고금리 영향으로 연체가 불어나는 모양새입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기기가 모여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10월 신규연체 발생액은 2조4000억원으로 전월대비 2000억원 증가했습니다. 연체채권 정리 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3분기말 상·매각에 따른 기저효과로 전월대비 1조7000억원 줄었습니다. 신규연체율은 0.11%로 전월(0.09%)대비 0.0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전년동월(0.05%) 대비로는 0.05%포인트 올랐습니다.
3개월 이상 연체돼 회수할 가능성이 없어진 부실채권을 의미하는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늘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44%로 집계됐습니다. 1년 전인 2022년 9월말 0.38%보다 0.06%포인트 올랐습니다. 5대 시중은행으로 좁히면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 잔액은 4조3419억원으로 전년동기(3조3086억원) 대비 31.2% 늘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 사면 등 선심성 금융정책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결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협조할 수밖에 없다"면서 "리스크 파악에 대한 부담 가능성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신용평가를 더욱 고도화해나가서 상환능력을 갖춘 차주를 잘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