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베란다에 들어서면 묘한 냄새를 맡았습니다. 가볍게 넘기던 중에 보일러실에서 다량의 물이 흘러 나온 흔적을 발견하곤 오랜만에 보일러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보일러실 벽에 이슬이 잔뜩 맺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잘못 됐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윗집에서 떨어진 고드름이 우리 집 연통을 때리면서 보일러와 연결된 연통이 빠져 있었던 겁니다. 다행히 보일러실 문이 꽉 닫혀 있어서 보일러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이 거실이나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매연이 보일러실을 달궈 그 온도 차로 벽에 이슬이 잔뜩 생기게 된 겁니다. 결국 급히 보일러 기술자를 불러 연통 수리를 맡겼습니다.
기술자는 연통을 교체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콘덴싱 보일러는 응측수가 보일러 내부에서 증화돼 배수 호스로 나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보일러는 연통을 아래로 기울게 설치를 하지만 콘텐싱 보일러는 5도 정도 위로 올려서 설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응축수가 건물 외부로 빠져나가게 된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대로 고드름이 돼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응축수는 산성이기 때문에 건물의 부식이나 환경오염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드름이 생기는 집을 체크한 뒤에 콘덴싱 보일러를 설치했으면 연통을 조정하라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물이 떨어지는 집의 위치를 확인 해준 기술자는 조심스럽게 해당 집 주인을 잘 아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치고는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저 얼굴만 알고 오고 가며 인사만 한다고 하자 가스비 절감을 위해서 콘덴싱 보일러를 설치하는 집이 늘면서 고드름 때문에 윗집, 아랫집 싸움이 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매년 비용을 들여서 연통을 교체할 수 없으니 문제가 된 집에 꼭 이야기를 하라고 당부하고는 기술자는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콘텐싱 보일러를 더 찾아 보니 5도 정도 위로 연통을 설치해도 연통 끝부분 배기 가스 배출 부분이 공간이 적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에도 고드름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연통 자체를 교체해야 하는 건데 시공상 문제 없다고 해버리면 결국 싸움 밖에 나지 않는 겁니다.
아파트하면 꾸준히 불거지는 이슈가 층간소음입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사건이 나기도 하고 윗집이 시끄럽게 한 줄 알고 얼굴을 붉히며 싸웠더니 알고 보니 다른 집이었다는 이야기도 흔합니다. 그런데 고드름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한다니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연통을 교체하고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당 집의 문을 두드리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저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되면 인사를 하면서 넌지시 말을 꺼내 볼까 합니다.
보일러 연통.(사진=뉴시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