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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값과 통신비
입력 : 2024-02-08 오전 10:52:16
퇴근 후 슈퍼를 찾았습니다. 냉장고에 똑 떨어진 과일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귤을 바구니에 채웠습니다. 분명 지난주만 해도 1만원이면 살 수 있던 딸기는 1만3000원으로 올랐고, 귤도 몇 개 들어 있지 않은 것이 1만원을 훌쩍 넘더라고요. 매일 시가대로 파는 가게여서 가격이 오르내리길래 조금 더 싼 과일이 없나 기웃거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과는 선물상자에만 담겨있네요. 아, 명절을 앞두고 있었죠. 
 
생각해 보면 명절이 가까워지면 과일 가격이 오르는 일은 매해 반복됐습니다. 물론 최근 과일 가격은 이상 기온 여파로 생산량이 줄어든 영향까지 더해졌지만,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이 다가오면 대개 올랐습니다. 생산량을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반영해 공급자들이 가격을 올리기 때문이죠. 가족들과 함께 먹을 거리, 차례상에 올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성수기 기대 심리가 가격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으레 명절이 지나면 다시 가격은 안정화되곤 했습니다. 명절에 다 팔지 못했다면, 명절만큼 찾는 사람이 덜하다면 판매자 입장에서 가격을 내려 물건을 파는 것이 이득이기에 시장은 적정가격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 판매 중인 과일 선물세트. (사진=뉴시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경제활동 현장에 실제 존재하는 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했죠.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경제행위가 시장에서 잘 교환되기만 한다면 별다른 인위적 행위 없이도 시장이 스스로 적정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정부는 곳곳에서 가격 인하 압박을 펼치고 있습니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말을 최우선으로 앞세우는 걸 잊지 않습니다. 통신비도 정부가 압박하는 대표적 분야죠. 지난해에는 요금 인하 압박을 넣자 저가 요금제 라인업이 확대됐고, 최근에는 단말기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공시지원금 확대로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일단 선택의 폭은 확대됐습니다. 낮은 요금제가 필요한 사람들 중 일부가 선택적으로 요금 인하 효과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요금인하를 체감할 수 있을까요. 시장 독점에 따른 통신사들의 담합 수준의 가격은 내버려둔 채, 일정 부분에 대해서만 인위적으로 개입해 경제질서를 변화시키려 했기에 극히 일부분에서만 효과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정부의 개입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장에 의한 가격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가는 수준에서 개입이 이뤄져야겠죠. 시장 왜곡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구조적 접근은 환영합니다. 다만 단발성, 선심성 정책은 외려 시장을 혼란스럽게만 할 뿐입니다. 정책효과에도 물음표가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통신비 인하, 좋습니다. 하지만 통신 분야는 위에 언급한 과일보다 훨씬 더 막대한 투자비용이 듭니다. 정부가 정책을 펼 때 사업자에 갑작스레 조르는 식이 아닌, 시장의 구조적, 고질적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이유죠. 경제행위자들의 이기심 자체는 인정하되,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 주목해 정책목표를 세우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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