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이념전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두 축은 '이승만 재평가'와 '신통일미래구상'입니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띄웠습니다. 특히 '통일'을 8차례나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와 광복절 경축사 등 국경일 행사 연설에서 통일을 언급한 것은 처음입니다. 북한이 남북을 '교전 중인 두 국가'로 규정한 상황에서 "자유·인권 등 보편가치 확장이 통일"이라며 사실상 '흡수 통일' 의지로 해석될 만한 언급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오는 4·10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다시 이념 전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 6월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식 참석 이후 본격화한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은 같은 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모든 독립운동, 합당한 평가"…'이승만 재평가' 시사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어느 누구도 역사를 독점할 수 없다"며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독립운동가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외교독립운동을 재평가, 다른 독립운동과 똑같은 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이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윤석열정부는 올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을 선정했고 기념관 설립을 추진할 정도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에 공을 들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원전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도 "원전의 기초를 다지신 분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실로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자칫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이전 논란'과 같은 '이념 논쟁'에 휩싸일 수 있기에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는 건 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기념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도 곳곳에서 언급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결국 (이승만·박정희) 두 분 대통령의 결단을 시사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30년 만에 '통일방안' 수정…"체제통일 연상" 우려
'이념 전쟁' 카드를 꺼낸 정부는 30년 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한 수정 작업에 착수합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일 용산 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언급,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 자유의 가치가 누락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3·1절 기념식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했습니다. 남북 경색 국면 해소를 위한 새 제안이나 정부 조치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통일방안과 비전을 수정하겠다는 의지를 풀이됩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94년 김영삼정부 때 수립된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입니다. 자유·평화·민주의 기본 원칙을 토대로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 3단계 통일방안을 담았는데, 윤석열정부는 여기에 자유주의 철학이 더 반영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정부의 통일관과 통일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정부의 통일방안 수정은 남북 간 상호인정과 존중에 입각한 '과정 중심의 통일'에서 체제 통일 방향의 '결과 중심의 통일'로 전환하려는 포석으로 보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헌법정신이 평화고,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지속적인 평화에 의한 단계적 통일론"이라며 "이런 것을 봤을 때 '체제 통일'을 연상하게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새 통일방안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노태우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인데요. 당시 이 안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현재 여당의 의석수를 고려하면 단독 추진은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새 통일방안이 4월 총선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총선에서 여당이 최소 과반 의석을 점하지 못하면 통일방안 수정은 불가능합니다. 정부는 올해 광복절에 맞춰 신통일미래구상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30일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보혁 갈등이 여의도를 뒤덮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