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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홍콩 ELS 선배상 한다고 제재 감경 받을까' 의구심
'조건부 제재 감경' 규정 사실상 사문화
입력 : 2024-03-0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 ELS)을 판매한 금융사가 선제적 배상안을 내놓을 경우 제재를 감경해 주겠다는 금융독원의 제안에도 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배상을 하면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인데요.
 
업계에선 대규모 금융사고와 터졌을 때 최고경영자(CEO) 중징계를 불사해 온 당국의 '무관용 원칙'에 대한 학습효과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제재 감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귀책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무관용 원칙' 학습효과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이 제재 감경 등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선배상을 유도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대규모 금융사고가 불거졌을 당시 선배상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 감경에 반영되지 않은 전례가 있기 때문인데요. 
 
그간 금감원은 금융사의 피해 배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행 CEO 등 징계에 있어서는 강경일변도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이른바 '무관용' 원칙인데요. 지난 2020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판매 금액이 가장 많은 하나·우리은행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개최 전 수백억원을 선배상하고, 배상위원회를 꾸려 배상 절차를 진행했음에도 제재를 낮추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함영주 하나은행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중징계인 '면책 경고'를 받았는데요. 함 회장의 경우 아직도 관련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CEO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이는 것 자체가 은행으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금감원이 새삼스럽게 제재 감경 인센티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이미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23조에는 '사후 수습 노력'을 기관 및 임직원 제재 감면 사유로 정하고 있는데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46조에도 '금융거래자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등 피해복 노력 여부'를 제재 시 참작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부통제 실패 시 CEO를 제재할 수 있도록 한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했는데요. 내부통제 부실 문제로 CEO까지 책임을 묻기는 부당하다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셈입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후 수습 노력을 통한 제재 감면 규정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융사고 규모와 사회적 파장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무관용 원칙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당국이 아무리 구두로 인센티브를 강조하더라도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됐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하면 시장 퇴출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경고했다.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이 원장이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사 퇴출 불사" 경고도
 
최근 금감의 유화적 태도에도 은행권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이복현 금감원장의 서슬 퍼런 경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장은 불과 한 달 전 '2024년도 업무 계획 브리핑'에서 "올해부터는 고객의 이익을 외면하고 정당한 손실 인식을 미루는 등의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하면 시장 퇴출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경고한 바 있습니다.
 
홍콩 ELS 불완전판매를 겨냥한 것인데요. DLF 사태 당시 사후 대책과 무관하게 CEO 중징계를 내린 '무관용 원칙'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이 원장은 "확인된 홍콩 ELS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고 합당한 수준의 피해구제를 추진하는 한편, 고위험 상품 판매규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다시는 후진적인 형태의 불완전판매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설 연휴 이후 홍콩 ELS 판매사의 2차 현장조사가 진행되면서 금감원은 조건부 제재 감경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하면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피해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향후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이 원장은 "잘못을 상당 부분 시정하고 이해관계자에게 적절한 원상회복 조치를 한다면 제재나 과징금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은 오는 11일 홍콩 ELS 판매사에 대한 배상안(책임 분담 기준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은행권 내에서는 아직 선배상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파생상품 운영상의 명확한 귀책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당국의 압박에 밀려 은행이 먼저 나서 선제 배상해 줄 경우 주주들로부터 배임 등의 지적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의 지분이 60% 수준에 달하는 금융지주의 경우 아직 명확히 결정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선배상할 경우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감독당국의 배상안 결정을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에 불완전판매에 대한 선제적 자율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 ELS 투자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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