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두고 초박빙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미약품그룹의 정점에 있는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통합안에 찬성하면서 사측과 이에 반대하는 편의 지분율 싸움은 더욱 팽팽해졌습니다. 이제 최종 승부는 2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에 의해 가려지게 됩니다.
법원·국민연금, 사측 손들어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늦은 오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8일에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사측이 낸 주총 안건을 모두 찬성하기로 했습니다. 주요 안건은 이사 선임에 관한 것으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등 현 경영진은 올해 초 OCI그룹과의 통합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구주·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확보하고, 송 회장과 임 사장 모녀가 OCI홀딩스 지분 10.4%를 갖는 지분 맞교환을 추진 중입니다. 이들은 통합그룹 출범을 발표하면서 양사가 2명씩 사내이사를 선임해 공동 이사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통합이 성사될 경우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는 OCI홀딩스로 변경됩니다.
반면 집안의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은 이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냈습니다. 이와 함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전날 법원은 “송 회장 등이 경영권 또는 지배권 강화 목적이 의심된다”면서도 “2년여 기간 동안 투자할 회사를 찾은 것을 감안하면 이사회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경영권의 향배를 좌우할 신주 발행을 허락한 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1%p 승부…형제 편 소액주주 지분이 관건
이번 한미사이언스의 주총은 바이오 의약품과 화학이라는 이종 업종 간의 통합이자 모녀와 장·차남 사이의 대결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해당 업계는 물론 증권업계에서도 관심이 뜨겁습니다.
국민연금과 법원은 사측 즉 송 회장 모녀의 손을 들어줬으나 최종 결론은 주총에 참여한 주주들에 의해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양측의 지분율은 일단 송 회장 측이 앞서 있습니다. 이번 주총의 의결권인 지난해 말 보유 주식 기준으로 송 회장과 임 사장, 가현문화재단 등 사측의 지분율은 31.88%입니다. 여기에 국민연금 지분율 7.66%를 더하면 40%에 육박합니다.
임종윤·종훈 두 형제의 지분율은 19.3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가족 지분에다 12.15%를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형제를 지지한 덕분에 차이를 크게 줄였습니다. 최근 형제 측이 40% 이상 주식을 모았다고 밝혀 양측의 지분율 차이는 박빙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 친지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종 캐스팅보트는 소액주주들이 쥐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들이 어느 편에 서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식투자 커뮤니티나 종목토론방 등에 드러난 일반 주주들의 분위기는 현 경영진 비판 일색입니다. 형식상으론 두 그룹의 통합이지만 내용상으론 모녀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한미약품그룹을 OCI에게 넘겼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OCI홀딩스 아래 부광약품이 있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한미사이언스와의 합병 가능성 때문입니다. 부광약품은 2019년부터 적자 행진 중이며 부채는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한미사이언스 주주들로서는 달가울 리 없습니다.
그러나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특성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몇이나 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주총의 의결권은 지난해 말 주주명부에 올라 있는 주주들에게만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 측은 소액주주 연대 플랫폼 액트를 통해 소액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받고 있는데 26일까지 여기에 모인 지분은 1%를 조금 넘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25일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과 함께 OCI그룹과 통합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임 사장은 27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사진=뉴시스)
국민연금 ‘A사 위해 B의 피해’ 찬성할 수도?
한편 이번 주총에서 사측 편을 든 국민연금 수탁위의 결정도 논란이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의결권을 행사한 주총에서 특별한 법적 문제의 소지가 없는 안건에 대해 대부분 경영진을 편드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도 사측 안건에 찬성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다만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한미사이언스의 이사진 후보 안건에 모두 찬성하고, 형제 측 주주제안은 반대를 권고했습니다. 글래스루이스도 사측 이사 6인 전원 찬성, 형제 추천 이사 반대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ISS는 사측 후보 6인 중 3인만 찬성했고, 형제 측 후보 중 2명은 찬성하는 의견을 냈습니다. 또 국내 자문사인 한국ESG기준원(KCGS)은 사측 6명 선임안에 불행사를 권고하고, 주주제안 5명 중 4명 찬성을 권고하는 등 전문기관들의 선택도 달랐습니다.
권고는 참고사항일 뿐 결정은 수탁위의 고유권한입니다. 그런데 소액주주들의 주장처럼 이번 통합이 한미사이언스에게 불리한 거래라고 해도 국민연금에겐 이익일 수 있다는 사실은 고민할 부분입니다. 국민연금의 경우 한미사이언스의 대주주이기도 하지만 OCI홀딩스의 지분도 10.21%를 보유한 주주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이 주주인 A와 B의 합병이 A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B에겐 일방적으로 불리할 경우, 이론상으론 A 주총에선 합병에 찬성하고 B 주총에선 반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연금 측은 “모든 것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불리한 합병안이라도 무어라 얘기할 순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확연하게 유불리가 갈리는 경우라도 양쪽 모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으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결정은 최종적으로 국민연금의 이익을 위해 A와 B 어느 한편의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이어서 국민연금에 도덕적 흠결로 남을 전망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