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해 4월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지난해 4월 말(4월24~30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맞춰 양국 문화행사로 추진된 걸그룹 '블랙핑크'와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합동공연이 무산된 이유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대통령실 내부의 눈치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뒤늦게 제기됐습니다.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외교안보 참모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측이 합동공연을 수차례 제안했음에도, 이를 윤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뒤늦게 해당 사실을 알게 된 윤 대통령은 매우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문희 외교비서관과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교체됐으며, 김성한 안보실장도 물러나야 했습니다.
바이든 여사 측, 대선 캠페인 차원 합동공연 요청
2일 본지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합동공연' 계획은 질 바이든 여사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 측 대응이 늦어지면서 해당 행사는 결국 무산됐다고 합니다. 미 백악관 측은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화려함과 역동성을 갖춘 젊은 두 아티스트의 합동공연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활용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국빈만찬 행사로 합동공연을 진행하는 안과 함께, 별도로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고 여기에 두 정상이 함께 참석하는 안이 제시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4월26일) 전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미국 측에선 블랙핑크가 미국 선거에서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히스패닉(중남미 출신 이민자)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대선 캠페인 차원에서 욕심을 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18.7%를 차지했습니다. 오는 2025년에는 미국 전체인구의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각종 선거에서 영향력이 급증했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노회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81세인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은 건강 문제가 항상 약점으로 꼽혔습니다.
이 같은 미국 측 요청에 이문희 비서관과 김일범 비서관, 김준구 주미한국대사관 정무공사, 유정현 외교부 의전장 등 방미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실무 라인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 여사에 대한 눈치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김 여사가 참석하는 행사 전반에 대해서는 김승희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 행정관은 김 여사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함께 다니는 등 오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선 당시 홍보기획단장 등을 맡다가 대통령실에 합류했고, 의전비서관이었던 김일범 비서관이 사퇴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사진은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왼쪽)와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보고 누락에 윤 대통령 '격노'…방미 앞두고 핵심 외교안보라인 교체
미국 측이 우리 측에 수차례 합동공연을 제안했음에도 제대로 된 회신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결국 윤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습니다. 유정현 의전장이 떠나고 지난해 2월23일 윤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인 김태진 주체코대사가 외교부 신임 의전장으로 임명되면서 윤 대통령에게 이 같은 사실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김 의전장은 윤 대통령에게 미국 측이 자신들의 제안에 대해 우리 측 답변이 없어 답답해한다는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즉각 격노했으며, 검사 출신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상황 파악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윤 대통령의 진노가 얼마나 상당했는지 모 인사는 "대통령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데시벨로 역정을 냈다"고 전했습니다.
이 일이 빌미가 되면서 김일범 비서관은 지난해 3월초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실무를 담당했던 이문희 비서관도 지난해 3월30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 대통령실을 떠났습니다. 이문희 비서관의 고려대 선배이자 직속 상관이었던 김성한 안보실장도 지난해 3월29일 물러나는 등 윤 대통령의 방미를 한 달여 앞두고 외교안보 라인이 대거 교체됐습니다. 그러자 당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주미 한국대사관 측에 갑작스런 인사 배경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비서관은 지난해 10월10일 국정감사에서 방미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교체된 배경을 묻는 박홍근 민주당 의원 질문에 "제가 사의를 표명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며 "인사권자의 결정에 따라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3월 말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했던 공관장들의 최대 관심사였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관련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결국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공연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3월31일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일정에 대한 공지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공연은 대통령의 방미 행사 일정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공연'은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공연'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김일범 전 비서관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인도, 부인도 않은 채 "저는 이제 공직을 떠났다. 자꾸 물으면 제가 입장이 되게 난처하니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또 다른 당사자로 지목된 이문희 전 비서관과 김태진 의전장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 역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