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주택 재원이 되는 '주택도시기금'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운용이 불투명하게 되고 있단 비판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주택도시기금 거버넌스 구조 개선방안' 포럼에서 장경석 국회 입법조사처 선임연구관은 "주택도시기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기금"이라며 "기금 지출 규모가 연간 100조원에 달하는데, 예산이라 국회 통제를 받긴 하지만 사실상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방향대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습니다.
기금의 법률상 관리·운용 주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지만, 사실상 허수아비 노릇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기금 운용을 통제하는 5개 위원회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기금운용심의위원회와 자산운용위원회 수장은 국토부 주택정책관과 주택기금과장이 맡고 있습니다. 장 연구관에 따르면 연간 13회 정도 열리는 기금운용위는 형식적으로 원안 의결될 뿐입니다. 국토부는 '사회 혼란'을 이유로 들며 회의록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 연구관은 "국민 기금인데 국토부가 HUG를 수직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실제 운용 내용을 보면 국토부의 주택정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기금이 쓰이고 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용처가 달라진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지적은 다음날 바로 현실에서 드러났습니다.
국토부는 13일 1983년 이후 41년 만에 청약통장 월 납입 한도를 상향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주택도시기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청약저축 납입액을 늘려 재원을 마련하는 안을 꺼내든 겁니다.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2021년 대비 35조원 증발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웃긴 건 기금 사용처 역시 '침체된 부동산 시장 부양'이라는 점입니다. 정부는 늘린 기금을 경매 위기 미착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분양 사업장 구제와 부동산 분양을 위한 신생아 특례 대출에 투입하려고 합니다.
즉,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기금이 부동산 시장 불황 때문에 쪼그라들었는데 또다시 국민 주머니를 털어 여전히 높은 집값을 떠받치겠단 얘깁니다.
주택도시기금 목표는 '주거복지 증진'과 '도시재생 활성화'로 귀결되는데 복지 재원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추락하는 집값을 올린 '1등 공신'이 특례 보금자리론이 아니었다면, 이번에 불어난 기금 활용처에 '신생아 특례 대출' 역시 제외되지 않았을까요.
정부는 집값 떠받치기 위해 기금 규모를 늘리기 전 수익률이나 신경 쓰길 바랍니다.
'2022 회계연도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결산 예비심사보고'를 보면 HUG가 위탁운용하는 주택도시기금 수익률은 2020년 5.18%에서 2021년 3.37%, 2022년 -3.78%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국토부 뒤 숨은 바지사장 'HUG'는 기금 운용 결과가 실제 주거복지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정책평가 결과도 따로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주택도시기금으로 높은 집값을 떠받치는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세사기 피해자는 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선 구제하는 데 기금을 쓰자고 할 땐 "무주택 서민의 청약저축에서 빌려온 재원"이라며 대통령 재의 요구권(거부권)까지 행사한 정부가 경매 위기 미착공 PF 분양 사업장 구제에는 발 벗고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주택자'를 입에 올리며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는 손사래쳤던 정부가 '유주택자'들이 좋아할 만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무주택 서민의 청약저축에서 빌려온 재원'을 쓰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니 참담할 따름입니다.
서울 한 부동산에 붙은 아파트 매매 가격.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