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주가가 뛰자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주도 덩달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AI 시장이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반도체 대장주를 비롯해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소부장(소재·장비·부품)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급등하는 모습입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관련주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수혜주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삼전·SK하이닉스, 엔비디아 밸류체인 여부에 희비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엔비디아 GTC'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KRX반도체 지수는 22.97% 상승했습니다. 국내 반도체주들의 강세는 글로벌 AI 시장 성장과 엔비디아의 주가 급등에 영향받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붙여 만드는데, SK하이닉스는 4세대 HBM인 HBM3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인 HBM3E를 공급하기 위해 품질 검증를 받고 있지만 통과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주가 상승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입니다. 엔비디아는 올해만 170%가량 올랐고, 지난해 6월 시총 1조달러를 넘은지 1년도 안 된 지난 6일 3조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엔디비아의 주가 급등은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오픈AI가 생성형 AI 서비스인 챗GPT를 선보이면서 관련주들이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성형 AI에 엔비디아의 GPU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AI 모델 개발에 필수적인 종합 반도체 ‘AI 가속기’ 시장의 98%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AI 열풍, N차 벤더부터 전력기업까지 급등
AI 반도체 열풍으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도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AI 반도체 대장주를 비롯해 이들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N차 기업들 주가는 더욱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KRX 반도체지수 구성종목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48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61조4889억원으로, 올초(50조6939억원) 대비 21.29% 상승했습니다.
현재는 엔비디아 효과에 관련주로 언급만 되도 주가가 모두 급등하고 있는데요. 주주들 역시 저마다 대장주를 자처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엔비디아 수혜주로 꼽히고 있는 대표기업은
한미반도체(042700)입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HBM 제조용 열압착(TC) 본더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데요. 이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17조3813억원으로 올해 초(5조9182억원) 대비 3배가량 뛰었습니다. AI 관련 수혜주로 꼽히는 소부장 기업 중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테크윙(089030)입니다.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HBM 검사 장비를 납품하는 테크윙은 같은 기간 시총이 4.4배 늘었습니다.
AI 열풍의 수혜는 전력설비 기업들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AI 서버 구축의 핵심인 데이터센터에서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AI 산업이 발전할수록 전력 생산, 설비 등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어나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 주가 상승률 상위 종목들도 AI 반도체·전력 관련주가 휩쓸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이날까지 상승률 상위 10개 중 6개 종목(삼화전기, 테크윙, 디아이, 제룡전기, 와이씨, HD현대일렉트릭)이 AI 반도체·전력 관련주로 집계됐습니다.
AI 시장 성장과 함께 관련주들의 옥석 가리기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정 테마가 오를때 마다 수많은 기업이 사업에 뛰어들지만, 수익화에 성공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최승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I 투자사이클은 장기간 진행될 것이고 그 안에서 종목간 차별화과 이어질 것”이라며 “초기는 기대와 테마성으로 움직였지만 차별적인 수혜와 실적 신뢰도가 높은 AI 밸류체인이 주도주의 지위를 견고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AI 거품론' 경고…묻지마 투자 주의
다,만 최근 주가가 급하게 뛴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AI 거품론’ 경고가 나오는 만큼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AI 수요 확대와 생성 AI에 대한 기대감은 확실하지만 실제 활용과 수익화까지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메타버스와 대체불가토큰(NFT) 관련주들이 급등했습니다. 당시 주가 상승률 톱10에 메타버스와 NFT 관련주 8개가 이름을 올렸지만 현재는 모두 급락한 상태입니다. 1~10위 종목 중 일성건설과 에디슨EV 제외한 8개 종목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평균 마이너스(-) 85.56%에 달합니다.
이영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AI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가이던스 및 컨센서스 추정이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며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생성 AI 활용을 위한 하드웨어 외에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매크로 이슈에 따른 기대감과 달리 공백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라며 “생성 AI의 모멘텀에도 불구하고 본격 수익화 확인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의 AI 관련주들의 급등에선 포모(FOMO)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AI의 장기 방향성은 확실하지만 모멘텀이 빠지면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면서 “‘묻지마 투자’의 피해는 개미들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