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서는 검찰 독재라 하지만, 무기력한 대통령이다. 기껏해야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도다. 그래도 나홀로 씩씩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여전히 최고의 권력자다. 지난 2년을 반성하면서 통치가 아닌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의 무대인 국회에서는 고립돼 있고, 정치의 기반인 국민 신뢰 또한 여전히 바닥이다. 정국은 원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주도한다. 탄핵과 입법 압박으로 사법부와 행정부까지 휘졌고 있다. 선출된 제왕과 홍위병의 제왕이 공존하는 분점정부 시절이다.
한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명제였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와 선거제의 개편이 과제로 제시됐고, 개헌을 동반한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자는 주장도 있었다. 포용과 상생이라는 민주적 공존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방향이었다. 헌재의 위헌 판결로 불가피하게 정당명부비례제가 도입된 것을 제외하고, 아무런 개혁 조치가 없었다. 진영정치는 더 극단화됐고, 국회가 정치인의 사법책임을 방탄하는 진지로 타락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민주제의 자체의 위기 상황이다.
진영정치가 극단화되면 민주주의가 어려워진다. 진영이 극단화 되면 상식과 가치 기준까지 진영에 따라 달라지면서 민주주의의 공유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실이나 공동체의 가치와는 무관한 권력 게임이 돼버린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정치’도 극단화된 진영정치가 동반하는 현상이다. 우리 정치에서 탈진실의 정치 현상은 민주화의 이념 정치를 주도해왔던 세력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민주화의 이념적 자산은 소진되고, 이제는 기득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카르텔 세력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의 정치와 더불어 보편적 개념이 돼버린 ‘탈진실의 정치’다. 며칠 전 바이든-트럼프 대선 후보 1차 TV토론 중계에서도 진실과 무관한 동문서답으로 태연하게 대응하는 트럼프를 보았다. 알려진 사실과 범죄 혐의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탄압 또는 조작된 사실이라고 오히려 맞서 공격했다. 전체적으로는 무기력한 바이든이 토론에서 완패했다는 평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다.
오늘날 탈진실의 정치에는 SNS와 인터넷의 시대적 환경이 있다. 수많은 정보는 집단 지성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의 혼돈시대를 만들면서, 자의적 주장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했다. 각종 소음과 전단지 수준의 뉴스가 난무하는 혼돈 시대가 돼버렸다. 잡음이 난무할 땐 들리는 소리만 듣거나 다른 소리를 차단하고 듣기 십상이다. 확증편향이 강화된다. 여기에 정략적 음모론까지 더해진다. 알다시피 음모론과 유사정보를 주로 생산하는 유투브 등이 극단적 진영정치의 언론 자산이 되고 있다.
실존적으로 불안한 인간의 속성상 집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쭝우(李宗五)가 후흑학으로 정리했듯이 권력 지향의 후흑 정치인이 등장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요즘 정치세력이 유사 종교집단, 또는 부족집단처럼 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비되는 전체주의 현상이다. 나찌즘과 스탈린이즘이라는 좌우의 전체주의를 분석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양상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탄핵 후유증과 상대 후보의 취약점을 배경으로 신승해 ‘처음 해보는’ 대통령, 나홀로 씩씩하다. 강아지 안고 좋아하는 사진에 국민들이 얼마나 함께 좋아할까? 민주화 운동을 자산으로 삼았던 세력이 전체주의적 카르텔 집단이 돼버린 오늘, 자괴감이 없을까? 민주주의 원칙, 정치적 대의와 책임, 인간적 염치는 권력투쟁 앞에 무의미하다. 그들만의 권력정치가 지배하는 요즘의 한국정치다.
김만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