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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의 K-국방)섣부른 핵무장, 국제 고립 피할 수 없다
미국 용인설은 소수 견해에 불과
입력 : 2024-07-16 오전 6:00:00
나경원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도 핵무기를 갖추자는 핵무장론과 관련해 서울대 연구자들이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핵무장론 찬성 반대를 물으니 61%가 찬성, 39%가 반대했습니다. 찬성 응답자들한테 핵무장을 하면 국제적으로 경제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다시 의견을 물으니, 그중 무려 58%가 핵무장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최초 질문에 핵무장을 반대한다고 했던 응답자들한테 핵무장을 하면 안보상 좋아지는 점을 설명해주고 다시 의견을 물었는데요. 그때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꾼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초 질문에는 핵무장 찬성이 우세하다가 전문가 수준으로 정보를 전달받은 다음에는 38% 대 62%, 반대 우세로 뒤집혔습니다.
 
시민들이 핵무장론에 솔깃했다가도 쟁점의 실상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는 이야기죠.(손상용·박종희, "한국 유권자들은 정말 핵무장을 원하는가?-실험 설문을 이용한 핵무장 여론 분석", 한국정치학회보 54-2, 2020년)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핵무장론을 활발히 띄우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나경원 의원이 핵무장을 공약으로 제시했죠. 주장 요지는 이렇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북한이 핵무기를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는 조건에서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해줄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도 미국 핵무기에 의존할(확장억제라고 부름) 게 아니라 자체 핵무기를 갖춰 북한 위협에 맞서자…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추경호 원내대표, 나경원 당대표 후보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핵잠재력 확보전략 정책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핵무기 원료로 쓸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을 미리 확보하자고 주장합니다. 여차하면 몇 달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자는 건데요. 당장 핵무기를 만들다가 국제 제재를 받으면 곤란하니 차선책으로 직전 단계까지만 가자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한국한테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제한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합니다. 유 의원은 핵잠재력 확보 운동을 하자고 무궁화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언론 상황을 보면 <조선일보>를 비롯해 몇몇 보수 신문이 핵무장 필요성을 띄우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편입니다.
 
최근 핵무장론의 배경을 볼까요? 북한이 몇 년 새 핵무력을 갖췄죠. 과거에는 북한이 재래식 전력만으로 한국보다 열세였습니다. 그때와 비교해 북한 위협이 늘었습니다. 미국 일부 논객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앤드루 여 선임연구원 7월9일 보고서 등) 미국이 확고하게 반대하지 않는다면 틈새를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국내 핵무장론자들은 이런 상황을 나름대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죠. 첫째, 섣부르게 핵무장을 시도하면 국제 고립과 제재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국제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입니다. 이 조약은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5개국을 제외한 나라한테 핵무기 보유를 금지합니다. 북한은 이 조약을 탈퇴하고 핵개발을 했습니다. 북한이 국제 제재를 받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북한처럼 살 이유가 없죠.
 
최근 핵무장론자들은 미국과 잘 협의하면 국제 제재를 받지 않고 핵개발을 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합니다. 일부 미국 논객들이 한국 핵무장 용인을 주장하지만, 미국에서 그런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든 트럼프 진영이든 미국 주류는 핵확산을 통제하겠다는 태도가 확고합니다.
 
한국 핵무장 용인설의 속내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 관영매체인 <미국의 소리>에서 미국 국방부를 취재하는 김동현 기자가 최근에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펜타곤 출입기자가 파헤친 미국의 본심>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김 기자는 미국 국방 정책 동향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책을 보면 일부 미국 논객이 한국 핵보유 용인론을 펴는 것은 미국한테 두 가지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미국은 핵 억제력을 제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은 한국에 쓸 돈과 인력을 아낄 수 있죠.
 
다음으로, 미국한테는 북한보다 중국 견제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스스로 핵무장을 한다면 미국은 한반도에 자기네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고도 한국 역량을 활용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죠.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은 김동현 기자와 인터뷰에서 "그들(중국)은 한국이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핵무장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의 연장선이라고 간주할 것입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때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드는 높은 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탐지해 요격하는 무기체계입니다. 2016~17년 박근혜정부 말기에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죠. 한미 당국은 북한 위협 억제용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은 자국을 위협하는 무기라며 한국에 경제 보복을 했습니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중 외교 대화를 통해 갈등을 근근이 봉합했죠.
 
로버트 아인혼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중국은 동아시아판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하자, 미국은 3차 세계대전을 불사한다는 태세로 맞섰죠. 소련은 미사일 배치를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북한 위협을 억제하려고 핵무장을 했다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와 적대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안보가 튼튼해지는 게 아니라 안보가 훨씬 불안해집니다. 그런 일을 왜 하나요?
 
핵무기를 당장 만들지 말고 원료만 확보해두자는 '핵 잠재력' 주장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우리도 원자력 산업 능력은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평화국가 노선과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 목적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판에 군사적 목적이 뻔히 드러나는 '핵 잠재력' 주장을 하고 다니면 기성 핵강대국들이 어떻게 볼까요? 얻을 게 없습니다.
 
둘째, 핵에는 핵으로만 맞설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위협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대원칙은 군사력 대응과 대화를 병행하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는 상대방을 완전히 파괴할 핵무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 믿지 않습니다. 국방장관 회담을 비롯한 대화 채널과 핫라인을 상시 가동합니다. 우발적 충돌이나 오판을 통해 전쟁에 끌려 들어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죠.
 
남북한은 군사력 대치 수준이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데도 대화 채널은커녕 위기 회피를 위한 군사 핫라인도 없습니다. 접경지역 충돌을 막기 위한 9·19군사합의마저 효력을 정지시켰죠. 유례가 드문, 위험한 상황입니다. 북한과 대화를 복원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충돌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전쟁을 방지할 힘이 지금도 없는 게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 연구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 보고서에서 2024년 세계 군사력 5위에 올랐습니다. 국민들이 꾸준히 국방에 투자해준 결과죠. 여기에 세계 최강인 미군과 연합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은 같은 기준으로 36위입니다.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우리 국방 태세를 제대로 알면 독자 핵무장 같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합니다.
 
핵무장으로 평화와 경제 번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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