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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북러 밀착과 한국의 유라시아대륙 외교
입력 : 2024-07-22 오전 6:00:00
6월 19일 평양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동맹의 복원을 선언했다. 1961년 조·소 동맹조약이 소련 붕괴 이후 2000년에 북·러 조약으로 대체되면서 군사적 상호 원조 의무가 사라진 상태였는데, 금번 2024년 신조약으로 양국 관계가 명실상부한 동맹관계로 격상된 것이다. 탈냉전 이후 러시아는 남북한에 대해 등거리 정책을 표방해 왔으나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을 우선시해 온 바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일대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문제 국가(trouble maker)에서 벗어나 중국 외에도 강력한 군사적, 경제적 후원 국가를 확보한 지위로 올라선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탈냉전 이후 최고의 지정학적 환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북 제재가 무력화된 것이 중요하다. 중국조차도 서방의 눈치를 보느라 유엔의 대북 제재를 큰 틀에서 준수해 온 마당에 러시아가 대놓고 제재를 비웃게 됨에 따라 북한으로서는 에너지,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국가 생존에 대한 안보상의 안전감을 높였다는 데 금번 조약의 의미가 있다. 이미 핵 무력 고도화를 통해 물리적, 내적 억제력 극대화에 매진해 온 북한은 미국에 버금가는 핵 강대국인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외적 억제력까지 보탤 수 있게 되었다. 미국과 북한 간의 좁힐 수 없는 핵 능력의 비대칭성을 고민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의 군사원조 약속이야말로 북한이 추구하는 억제력의 정치·군사적 완성의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중대한 함의를 갖는 북러동맹 복원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윤석열 정부는 북러 조약 체결을 시대착오적으로 비판하며 초강경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한러 관계가 더욱 급전직하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국내 보수 여론은 북중러와 한미일 대결 구도가 굳어졌고, 러시아가 한국에 대한 레드라인에 근접했기 때문에 대러 강경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대러 독자 제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직접 제공, 그리고 한미일과 나토 안보협력 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 인식과 대응책에는 문제가 있다. 먼저 국제질서의 진영화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 시대의 북중러와 한미일 대결 구도가 재현되었다는 인식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중국은 북중 관계, 중러 관계 등 북한과 러시아를 쌍무적으로 상대하고 있을 뿐, 북중러 삼각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과 러시아와는 다르게 유럽과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 조절이 여전히 중국의 발전 전략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러 밀착에도 불구하고 한러 관계 관리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 시장에 철수하는 한국 기업을 대체하여 중국 기업이 진출하는 것도 러시아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안보적 관점에서도 한러 관계 관리는 중요하다. 금번 북러 조약 제3조를 보면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쌍무협상통로를 가동시킨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한러 관계가 좋다면 러시아를 지렛대 삼아 유사시 한반도 위기관리를 시도할 수 있는 유용한 기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서서 한러 관계를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실행하는 순간 대러 레버리지는 상실되고, 한러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러 관계의 악화에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여파가 북러 밀착의 직접적 계기이긴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키이우 방문, 나토 정상회의 연속 참석,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접적 무기 지원 등 반러시아 행보도 푸틴의 전략적 결정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의 북방외교가 일궈온 한러 관계가 망가지면서 러시아 시장을 잃고 있고, 정치·안보적으로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전쟁의 와중에 한국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동조하면서 한중 관계, 한러 관계에서 동맹의 연루 비용이 커진 탓이다. 강대국 세력권이 부딪히는 지정학적 중간국으로서 강대국 경쟁에서 파생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관리하지는 못할망정 그 부담을 더욱 자초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전쟁의 향배나 미러 관계에도 큰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적대적인 대러정책으로 중러 관계만 밀착시켰다는 게 트럼프 진영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진영경쟁의 첨병 역할을 자처하다가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해륙국가인 대한민국이 인도·태평양이라는 반쪽 정체성에 갇혀 우리의 외교 지평을 스스로 좁히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때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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