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태풍 개미가 필리핀, 베트남에 이어 중국을 강타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곧 개미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지 걱정이다. 다행히 개미를 피한다 해도 난관은 남아 있다.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예보되어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올 여름은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갑작스런 국지성 폭우가 내리는 일이 빈번하다. 양상만 다를 뿐 지구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어디에서는 가뭄으로 난리이고, 또 다른 곳에선 홍수로 난리이다. 한 해의 여름을 지날 땐 다가 올 겨울이 걱정되고, 겨울이 지나면 이듬해 여름이 또 두렵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지만 올 해 나는 더 특별하게 그 느낌을 받고 있다. 4개월 전부터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한동안 감자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판매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바는 없지만 추측컨대 이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감자 공급처인 미국 농장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짐작했다. 그 즈음에 미국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난 기사들을 봤기 때문이다. 판매중단 사태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나 감자포장지가 기존의 황토색 종이봉투에서 중국어가 쓰인 비닐봉투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서야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결국 공급처가 바뀌었다는 의미이니까.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사검색을 해보니 다른 프랜차이즈들의 상황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되었다. A사는 양상추에, B사는 생지에 수급 문제가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오렌지, 설탕을 비롯해 인류가 주식으로 먹는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농작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후위기를 다루는 영화들도 사뭇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달라진 기후가 인류에게 어떤 위협과 공포로 다가오는지가 주된 내용이었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기상이변이 일상화한 현재와 미래를 다룬다. 딘 데블린 감독의 <지오스톰>(2017)에서는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우주에 기지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기후를 통제하고 있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2019)에서 일본은 몇 년째 그치지 않는 비로 도쿄가 점점 물에 잠겨가는 상태이다.
“날씨란 건 하늘의 기분이야. 정상도 비정상도 없지.”
판타지 가득한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를 통해 경각심을 호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비를 멈추기 위해서 인간이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설정만큼은 꽤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이 상태대로라면 인류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지오스톰>에서 그리는 현실의 가능성이다. 우주정거장에서 관리하는 각 국가의 인공위성이 기후를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역시 과학이 답이라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그 희망이 곧 절망의 근거가 된다. 역사가 증명하듯 과학은 정치에 종속되기 십상이다. 절대 학습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것, 바로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폭염과 폭우는 그 자체로도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설사 그것이 인류를 전멸시키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야기하는 식량부족 사태로 인류의 역사는 결국 짧게 끝날 것 같다.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더 많은 인류학살의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분은 참 신기하다. 창밖에 아침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로 활기차지고,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돼!”
미래에 대한 내 불안과 걱정은 단지 푸른 하늘을 가린 긴 장마의 탓이기를. 이 여름이 우리 모두에게 해피엔딩이기를, 제우스신이여 부디 허락하소서.
이승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