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79회 광복절을 맞아 3대 비전과 3대 추진 전략, 7대 추진 방안을 담은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 열망'을 촉진시키고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통해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인데요.
이와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16일 대북 전문가 3인에게 윤석열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가나다 순)이 참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8·15 독트린'에 대한 전문가 진단.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승만 '북진통일' 판박이…"이렇게 노골적 정부 처음"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 축사에서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놓고 '자유 북진'을 앞세운 '흡수 통일'을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는데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8·15 통일 독트린 관련 브리핑을 열고 "흡수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힘에 의한 강압적인 현상 변경을 통한 통일이라고 누군가가 정의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부의 정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진단은 달랐습니다. 양 총장은 "북한 정권, 정부를 배격하고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 내 평화통일 추진 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통일 달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흡수통일을 공식화하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및 북한 당국의 인위적 배제는 북한 내 주민혁명을 일으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북한 '체제 붕괴론'과 연결된다"고 짚었습니다.
임 교수는 "이승만정부 당시 통일 정책이 '무력 북진 통일'인데, 윤석열정부에서 '자유 북진 통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며 "역대 정부에서 각각의 통일 비전을 발표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북진 흡수통일을 하겠다고 선언한 정부는 처음"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겠다는 것은 굉장히 공격적 정책"이라며 "역대 정부가 수면 아래서 해온 것을 드러내서 한다는 것은 통일정책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1960년대 북한의 통일 정책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던 시기에 내놓은 것이 '3대 혁명역량 강화 방침'"이라며 "북한이 사회주의 기지를 건설하고 남조선의 혁명 역량을 강화시켜 대내외적으로 국제 연대를 강화해 남조선을 흡수 통일하겠다고 선언했던 내용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3대 혁명역량 강화 방침을 뒤집으면 윤석열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이 된다는 건데요. 윤석열정부가 밝힌 3대 추진 전략 중 '국내에서 자유주의 가치관 역량 배양'은 사회주의 기지 건설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 열망 촉진'은 남조선 혁명역량 강화가, '자유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는 국제 연대 강화로 대치되는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계승?…"허울뿐인 물타기용"
윤석열정부는 8·15 통일 독트린이 지난 1994년 여야 합의로 마련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계승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양 총장은 "7대 통일 추진 방안을 보면 북한인권보고서 출간, 북한 자유 인권펀드 조성 등 허울은 좋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는 사업들을 나열한 것"이라며 "남북대화와 인도적 지원은 하겠다고 하는 데 어느 국가가 이런 모순적인 제안을 수용할 것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첫 단추가 '화해·협력'인데 8·15 통일 독트린에 담긴 방안은 허울뿐인 '물타기용' 대화 방안을 설정해 놨다는 겁니다.
임 교수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핵심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과정을 담았는데 현 정부의 방안은 북한을 압박하고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라며 "8·15 통일 독트린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김 장관은 남북 당국 사이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한 것이 화해·협력이라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밝히는데요.
이는 전혀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정 전 장관은 "이미 북한은 남한을 적대국으로 분류하고 최근 남한의 수해 지원 의사까지 거부했다"며 "윤석열정부에서의 대화는 이미 틀렸다"고 꼬집었습니다.
"탈북자 재북 가족 주요 감시대상 될 것"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삶을 고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임 교수는 "정부의 현 정책은 탈북자 인권 조사 과정에서 외부 정보 영향력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북한 내부에 정보를 유입시켜 체제 붕괴까지 고려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공개적인 방식의 정보 유입은 북한 내 주민들의 통제만 강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 전 장관도 "정보 유입 방식은 결국 대북전단과 대북 확성기밖에 없는데, 결국에는 북한 내 24시간 상시 감시 체계 가동이 불가피하다"며 "특히 탈북자들의 재북 가족들이 주요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양 총장은 "북한은 결국 '두 국가론'을 강화하고 조기 세습 체제 구축과 주민 통제 강화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만 악화될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밀착을 더욱 견고히 할 경우 북한은 중국화·러시아화 되는 과정에서 영속적으로 별개의 국가가 될 수도 있고 통일은 오히려 더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