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의 '묘한 기름값' 발언 이후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알뜰주유소가 오는 29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12월29일 용인시 처인구에 제1호 알뜰주유소가 문을 열면서 알뜰주유소는 전국으로 본격 확대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당초 알뜰주유소 출범과 함께 리터(ℓ)당 100원 저렴한 기름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올해 말까지 1000여개 알뜰 주유소를 신설, 기존 주유소와의 가격 경쟁을 유도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서울 헌릉로에 위치한 NH농협 알뜰주유소
2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자영 알뜰주유소가 264곳, 도로공사 알뜰주유소가 156곳, 농협 알뜰주유소가 394곳으로 전국의 알뜰 주유소는 모두 814곳에 달한다. 지난 3분기까지 알뜰주유소는 700여곳으로 급속도로 늘었지만, 최근 수익성 악화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급격한 확산세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실제 정부 호언과는 달리 서울지역 알뜰주유소 1호점인 형제주유소는 지난 9월 6개월만에 영업부진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이는 개점 초 대대적인 홍보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근처 다른 주유소들과 실제 가격차이가 사라지면서 고객 감소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데 따른 것이다. 이외 다른 지역의 알뜰주유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알뜰주유소 자체는 '실패'..가격경쟁력 통해 기름값 하향평준화 이끌어
지난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알뜰주유소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알뜰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올 2월과 6월 알뜰주유소의 공급가와 판매가의 차액을 비교하면 휘발유는 73원에서 153원으로, 경유는 87원에서 136원으로 증가했다"며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가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 지적대로 알뜰주유소 자체의 가격 경쟁력은 높지 않다. 현재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이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30원 정도 싸지만, 알뜰주유소는 사은품과 카드할인 혜택 등이 없어 일반주유소와 실제 가격 차이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면 알뜰주유소가 초기 목표인 ℓ당 100원 저렴한 기름값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인근 주유소 간 가격경쟁력을 부추겨 가름값 인하 효과를 본 긍정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례로 서울 장지동 송파대로에서 성남 태평동 성남대로에 이르는 3㎞ 안에는 주유소와 LPG 충전소 등 8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알뜰주유소처럼 가격이 저렴한 Nc-OIL 주유소를 포함해 SK주유소, GS주유소, S-Oil주유소,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등 국내 모든 종류의 주유소가 위치해 있다. 인근 헌릉로의 NH농협 알뜰주유소와 GS주유소 2곳까지 더해져 서울시 장지동 일대는 주유소간 경쟁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하지만 Nc-OIL 주유소가 들어오기 1년 전 이곳 장지동 일대 기름값은 대체로 상향 평준화를 이뤘다.
그러다 Nc-OIL 주유소가 문을 열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정유사 폴 주유소들이 사은품을 지급하지 않거나 박리다매 형태의 영업을 지향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지향하는 노력을 펼쳐 현재는 기름값이 하향 평준화됐다.
27일 서울지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2007원이지만 복정역 근처 주유소들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1870원대에서 1940원대를 이뤘다.
◇송파대로 일대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
서울 문정동에 거주하는 운전자 윤모씨(52세)는 "Nc-OIL 주유소가 들어오면서 인근 주유소들의 휘발유 판매가격이 내려갔다"며 "Nc-OIL 주유소나 근처 농협주유소보다는 S-Oil주유소가 더 저렴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짜석유 판매와 주유소 간 치킨게임
알뜰주유소가 일으킨 가격경쟁력 덕분에 기름값은 내려갔지만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우선 주유소들의 수익성 악화가 한층 심화됐다. 주유소들이 휴지나 생수와 같은 사은품을 없애거나 셀프주유소로 전화하면서 운영비용을 줄이고 있으나, 수익성은 예전만 못하다고 주유소 사장들은 입을 모은다.
이로 인해 자본이 충분치 않은 주유소는 치킨게임의 희생자가 돼 문을 닫았고, 이득을 내기 위해 일부 주유소 사장들은 '가짜석유'에 손을 대는 등 소비자 피해와 함께 사회적 폐단이 나타났다.
실제 송파대로와 성남대로 인근에 위치한 주유소 가운데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주유소가 2곳, 영업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한 주유소 또한 2곳이나 된다.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Nc-OIL의 영업정지 모습(왼쪽)과 장지동 일대 문을 닫은 주유소(오른쪽)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곳 중 한 곳은 Nc-OIL 주유소로, 이곳은 농협 계열사인 남해화학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Nc-OIL 주유소는 알뜰주유소는 아니지만 사은품 미지급, 세차 서비스 미제공, 카드 포인트 미지급 등으로 일반 주유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기름을 제공했다.
그러다 지난 1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3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더 이상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이 주유소는 무리하게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지난 3월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됐다. 현재는 6개월의 영업정지가 풀렸지만 문을 닫고 있는 상태다.
Nc-OIL 주유소 인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은 "처음 Nc-OIL이 들어왔을 때 차량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줄을 길게 늘어섰다"며 "언젠가부터 주유 고객 차량의 시동이 꺼지는 등 주유 후 이상이 생겼다는 제보로 가짜석유 판매가 적발돼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이어 "Nc-OIL이 적발되기 전에도 근처 주유소 중 한 곳이 가짜 석유를 팔다 적발돼 지금은 새로운 주유소로 바뀌었다"며 "갈수록 주유소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어 우리도 주유소를 접고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금 낭비 문제는 '갑론을박'
지난달 지식경제부는 내년 알뜰주유소 예산을 500억원 정도 설정했지만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와의 예산 협의 과정에서 81억원으로 대폭 감액됐다.
지경위는 이와 관련해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가 사실상 없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명시했고, 아울러 최근 알뜰주유소 설립이 크게 준 것도 한몫한 것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알뜰주유소를 처음 설립하면 정부에서 알뜰주유소 사업자에게 소득세와 법인세, 지방세를 일시적으로 감면해 준다. 여기에 기존 주유소를 매입하거나 임차해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경우 시설개선자금과 외상거래자금 지원과 더불어 서울지역 전환 사업자는 2012년에 한해 시설개선자금으로 5000만원도 받는다.
지난 7월부터 정부는 알뜰주유소 활성화를 위해 석유전자상거래 통해 거래되는 일본산(産) 경유에 대해 수입 제품 관세 3% 면제와 수입부과금을 환급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산 경유는 7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간 200억원에 가까운 세제 혜택을 봤다.
정부는 알뜰주유소에 일본산 경유와 똑같은 혜택을 주면서 중국 국영석유회사를 통해 휘발유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반도체, 전자기기, 자동차 등을 누르고 수출액 1위를 기록해 정유·화학 업종이 수출 효자 종목임을 다시 입증 한 반면, 국내 현실은 정부가 세금혜택까지 주면서 휘발유와 경유 수입량을 늘리고 있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정부의 석유제품 수입 확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자사에서 생산하는 석유제품 중 경유가 가장 많은 재고량을 기록하고 있고, 이는 국내에서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석유전자상거래로 석유제품들이 한시적인 혜택으로 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지만 혜택이 끝나면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알뜰주유소를 총괄하고 있는 지식경제부의 입장은 투입된 세금보다 이득이 크다는 입장이다.
지경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까지 알뜰주유소 정책에 사용된 예산은 46억원. 같은 기간 자영 알뜰주유소의 전국 평균가는 휘발유 기준으로 ℓ당 1953원으로 전국 평균가 1995원보다 42원 저렴했다.
또 지경부는 지금까지 알뜰주유소를 통해 판매된 물량을 감안하면 알뜰주유소 이용 고객이 누린 직접적 혜택이 505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밖에 기름값 인하 효과로 소비자가 얻은 혜택은 모두 793억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1300억원에 달하는 혜택을 소비자가 직간접적으로 누렸다는 게 지경부 주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은 "알뜰주유소가 유통시장에서 가격인하 경쟁을 일으키고 있어 알뜰주유소 자체가 ℓ당 100원까지는 아니지만 주변 주유소들 포함해 ℓ당 38원 정도의 인하 효과가 있다"며 "전자상거래 등 다른 유통거래 개선 정책을 보완하면 국제유가 등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름값 하향 평준화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