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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무한 진동하는 음악
하이팅크, 런던 심포니, 피레스 궁합 절묘..모든 곡이 '레퍼토리'
입력 : 2013-03-02 오전 10:50:1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클래식 공연이 관객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지휘자, 오케스트라, 협연자 간 궁합이 적절해야 한다. 명품으로만 뒤덮는다고 옷맵시가 나는 게 아니듯, 각각의 음악가가 기술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음악적 지향점이나 색깔이 다르면 좋은 협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 밖에 프로그램의 유기적 구성의 영향도 적지 않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은 음악감상자의 정서적 흐름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양시키는 효과까지 낸다.
 
2월28일과 3월1일 양일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연은 위의 조건들을 남김 없이 충족시켰다.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절제하는 지성은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포르투갈 출신 피아니스트 마리아 후앙 피레스와 절묘한 궁합을 이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정통성과 유연성을 무기 삼아 열정과 냉정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두 거장의 든든한 뒷심이 됐다.
 
프로그램 구성도 탁월했다. 전체적인 음악흐름과 협연자를 배려한 구성은 관객에게 감상 포인트를 적절히 제시했다.
 
첫날 첫 무대는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중 네 개의 바다 간주곡으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개성이 듬뿍 드러났다. 이어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에서는 명징하고 섬세한 피레스의 연주가 관객의 귀를 정화시켰다. 다음 곡은 엄격한 형식 속에 낭만과 정열을 담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었다. 유려한 관현악 속에 폭발하는 듯한 타악 파트가 돋보인 이 곡은 다음날 연주회와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둘째날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협주곡인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피레스가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다. 그녀만의 해석이 돋보인 연주였다. 전날의 모차르트적인 명료함에다 베토벤 특유의 정열을 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곡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하이팅크의 장기로 꼽히는 이 곡은 이번 내한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악장에서는 경건하고 묵상적인 분위기가 압도했다. 현의 끝없는 진동, 바순의 낮은 소리, 호른과 바그너 튜바의 따뜻하면서도 웅장한 소리가 공연장을 감쌌다. 이후 현의 진동이 사라지면서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가 잠깐 동안 스친 후 다시 현의 진동으로 긴장감을 유발한다. 지휘자의 섬세한 곡 해석 덕분에 음악적 구조가 마치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드러났다.
 
2악장은 상반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반주로 시작하는 이 악장은 '트리스탄 코드(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선보인 두 개의 불협화음)'를 사용해 신비로우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준다. 한순간에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가 다시금 사랑스러운 주제로 넘어가는 부분이 반복되는데, 런던 심포니의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특히 바이올린 파트는 마치 칼로 쓱쓱 베듯 큰 활놀림과 아기자기한 피치카토를 효과적으로 대비시켰다. 관악기와 타악기의 탁월한 볼륨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3악장에서는 경쾌하게 시작해 평온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바그너 튜바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포르타시모의 대형 불협화음 속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금관악기는 이색적인 종교성을 유감없이 표출하며 관객을 천상의 세계로 인도했다. 브루크너 특유의 금관악기 사용이 유감없이 빛난 악장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에스트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런던 심포니가 선보인 음악세계는 화려하다기보다는 엄밀하고 정제된 인상, 정중동의 느낌 속에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다. 사실 하이팅크의 지휘동작의 경우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 주목을 끌기 힘들었다. 눈으로 직접 보니 아무래도 지휘자보다는 연주자에게 시선이 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지휘자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스레 깊은 깨달음을 준다.
 
음악으로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장의 내한공연은 무려 36년만에 이뤄졌다. 올해로 84세가 된 하이팅크를 과연 언제 또 다시 직접 만나게 될까 싶다. 브루크너가 생전 마지막으로 작곡했다는 교향곡 9번의 감동이 한결 진했던 이유다.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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