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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배우 호연으로 밀도있게 표현한 '본능의 힘'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수업>
입력 : 2013-03-04 오후 6:04:09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사람 사이 진정한 소통은 요원하고, 본능은 이성보다 늘 힘이 세다. 소통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자 이성은 무력하게 자신의 자리를 본능에 내어준다.
 
루마니아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수업>은 소통의 불가능성과 본능의 파괴적인 힘을 그린 역작이다. 이오네스코 특유의 언어 유희, 그리고 유머와 그로테스크의 역설적 결합이 돋보이는 이 극은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작품의 유명세가 있는 만큼 이미 우리나라 무대에도 수차례 오른 바 있다. 하지만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무대화한 <수업>의 의미는 각별했다. 소름끼칠만큼 우리 일상과 닮아 있는, 원작의 의미와 깊이를 제대로 살린 수작이기 때문이다. '2012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국립극장페스티벌 공식초청작'이라는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수업>에서 여학생은 종합박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수학과 언어학 수업이 차례로 진행되면서 여학생은 점차 활기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 집안일을 봐주는 아줌마(원작의 하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지식을 강요하고, 계속해서 불합리한 의사소통을 시도하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이윤택 연출가는 원작에 암시된 코드를 적극 활용해 극의 의미를 선명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부여했다. 일단 캐스팅부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줌마 역할을 맡은 배우 김아라나는 풍만한 몸매로 창부 이미지를 표현하고, 교수 역의 배우 이승헌은 아줌마보다 키가 작아 마치 성의 노예같은 인상을 준다. 학생 역은 노래 잘 하는 배우 박인화가 맡아 교수의 가르침에 일부 노래로 답하는 등 캐릭터의 활기찬 분위기를 극대화해 표현한다.
 
이오네스코의 언어유희를 한국적으로 맛깔스럽게 살린 각색도 돋보인다. 원작의 언어학 수업 장면에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등의 차이를 이용한 유머코드가 삽입돼 있는데 연희단거리패의 대본은 우리나라 배우가 연기하기에 전혀 무리 없이 효과적으로 윤색됐다. 프랑스어로 '할머니'는 '할망구', '노랗다'는 '누르르렇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여지 없이 관객의 웃음보가 터진다.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소통불가능이 극한에 이른 순간들마다 조명 변화와 음악 삽입으로 극에 리듬을 부여한 점도 인상적이다. 학생이 교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노래하는 대목, 교수가 군에 몸담을 당시 겪은 친구의 이야기, 교수가 학생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버리는 순간들마다 차가운 빛깔의 조명, 음악 혹은 소음이 더해지면서 권력의 횡포를 암시한다.
 
블랙박스 무대에 놓인 소품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세면대, 흑색 칠판이 전부다. 의자 등받이의 높이에 차이를 둬 교수와 학생 간 권력 관계를 상징한 것 외에는 특별한 무대 장치가 없다. 이 연극의 힘은 오롯이 연출의 극 해석과 배우의 역할 창조에서 나온다.
 
무엇보다도 교수역을 맡은 배우 이승헌의 역할 창조가 빛난다. 이승헌이 여러가지 연기동작으로 보여주는 세밀한 해석은 대사의 의미를 풍성하게 한다. 학생을 향해 45도 정도 기울어진 몸, 과장된 표정은 폭압적이면서도 다분히 성적으로 해석된다. 또한 수학 수업에서의 손가락 동작, 입으로 중얼거리며 하는 계산 같은 사소한 대목에서도 창조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이승헌의 연기는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탄탄한 해석으로 다져진 판에 배우의 유연한 놀음이 어우러지면서 극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극중 어느 요소 하나 연희단거리패의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작 외젠 이오네스코, 연출 이윤택, 출연 이승헌, 박인화, 김아라나, 3월 9일까지 게릴라 극장.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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