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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현진건 소설 속 '생의 당황스런 순간' 포착
<현진건 단편선-새빨간 얼굴>
입력 : 2013-03-13 오후 3:01:1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조선의 체홉'이라 불리던 현진건의 단편소설이 낭독공연으로 무대화됐다. <운수 좋은 날>, <연애의 청산(1931)>, <그리운 흘긴 눈(1924)>, <정조와 약값(1929)> 총 4편이 지난달 말부터 산울림소극장에서 옴니버스식으로 공연 중이다. '산울림고전극장2013'의 참가작인 이 작품은 본래 지난주 막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관객의 호응에 힘 입어 이번 주까지 연장공연된다.
 
현진건의 소설은 극적 짜임새가 튼튼하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이지만 비교적 연극과 가까운 텍스트인 셈이다. 극단 양손프로젝트는 현진건의 소설 4편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당황스럽고, 황당한 '순간들'에 주목해 작품을 구상했다.
 
'새빨간 얼굴'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현진건 단편선 낭독공연에서 극단은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텍스트를 지렛대 삼아 배우들의 개성을 강조했다. 텍스트를 충실히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여타의 낭독공연과 달리 소리, 도구,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연극적 실험을 감행한 점이 돋보였다.
 
극단은 소설 텍스트를 공연용으로 변형하면서 각 작품마다 차별점을 뒀다. 네 개의 작품 중 세 편은 1인극으로 진행됐는데, 작품별로 배우 저마다의 장기가 톡톡 튄다.
 
배우 손상규가 맡은 <운수 좋은 날>의 경우 빈틈 없이 꽉 짜여진 연기동작이 눈에 띄었고, 배우 양종욱의 <연애의 청산>에서는 소리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빚어낸 리듬감이 돋보였다. 특히 배우 양조아는 <그리운 흘긴 눈>에서 능청스러운 노래솜씨와 1인 다역 표정연기로 탁월한 흡인력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정조와 약값>에서는 세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에서는 오브제를 상징화하고, 배우의 몸에서 비롯되는 소리 및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극단 특유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창살 등받이 달린 의자 하나가 이 극의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소도구로 쓰인다. 극의 흐름에 따라 의자는 산 속의 작은 언덕이 되고, 방과 방 사이 벽이 되기도 한다. 유머러스한 움직임은 극에 유쾌한 리듬감을 더했다. 한약방 영감 최주부가 병든 부부의 집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세 배우는 일렬로 바삐 걷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 밖에 속물 근성 가득한 의원인 최주부의 선글라스와 꽃무늬 셔츠 차림은 현대적이면서도 희극적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나 일부 공연의 경우 대본 각색이 원작 특유의 분위기를 훼손해 아쉬움을 남겼다. 소설 <운수 좋은 날>은 본래 전지적작가시점과 3인칭관찰자시점을 혼용하고 있다. 그런데 양손프로젝트는 소설을 무대화 하는 과정에서 시점을 1인칭주인공으로 바꾸고 김첨지가 아내의 죽음을 회상하는 식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극 초반부터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김첨지의 입을 통해 노출된 까닭에 원작 특유의 불안한 분위기가 희석되고 극적 긴장도 약해졌다. 배우 1인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소설의 전체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려다 보니 극이 여백 없이 촘촘하게 흘러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제작 양손프로젝트, 연출 박지혜, 출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무대·조명 박슬기, 그래픽 천녕술, 17일까지 산울림소극장.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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