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가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안티고네' 김호정
-신구, 박정자 등 대선배와 함께 연기하는 소감은?
▲어렵지만 두 분 다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분들이다. 신구 선생님 같은 경우는 텔레비전과 영화에서도 너무 좋은 연기를 보여주시는 배우시고, 박정자 선생님은 연극계에서 너무나도 존경받는 분이다. 두 분과 이렇게 한 무대에 선다는 게 사실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언제 또 이렇게 해볼까 이런 생각도 든다. 두 분의 연기가 너무 멋있기 때문에 기분 째지게 하고 있다(웃음).
-크레온과 대비되면서 부딪히는 역할이다. 신구와의 긴장감이 팽팽할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역할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있다. 신구 선생님과 내가 부딪히는 부분과 관련해, 연출가가 처음에 많은 주문을 주셨다. 예민하고 세밀하면서도 세련되게, 굉장히 예리한 칼날로 베는 그런 고도의 싸움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셨다. 그래서 항상 그 말씀을 명심하면서 그대로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의 명장면을 꼽자면?
▲신구 선생님과 같이 초반에 언쟁을 벌인다. 신구 선생님이 아주 노련하게 나를 옥죈다. 그런데 나는 젊은 혈기가 있는데다 역시 만만치 않은 왕가의 사람이다. 그런 치열한 싸움 부분이 다른 <안티고네>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일 것이다. 또 많은 분들이 코러스로 나오는데 거기서 스펙터클한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경사무대를 쓴다. 어렵지 않나?
▲우리 경사무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무대는 태, 움직임, 발성 등 배우의 여러가지 모습이 다 드러난다. 숨을 데가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무대다. 이런 무대야말로 원래 훈련된 배우만이 설 수 있는 무대다. 믿고 가는 것은 연기력밖에 없는 무대다(웃음).
-그럼 배우 김호정은 괜찮은 것 아닌가. 예전에 <보이체크>에서도 경사무대에 섰었다.
▲(손 사래 치며)아니다. 연기 못하면 다 들통나는 건데. 경사무대라는 게 굉장히 힘들고 예민한 무대다. 일단 잘 서 있어야 하지 않나. 한 번 경험해봤기 때문에 다행이긴 하다. 또 예전 <보이체크> 때는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반면에 여기 무대 같은 경우에는 길이가 굉장히 깊다는 특징이 있다. 코러스를 맡은 사람의 경우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날아다니다시피 해야 된다.
-평범하지 않은 무대에 주로 서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묘미다. 무대라는 게 보통은 평범하지 않다. 난 좋아한다.
-안티고네, 크레온 둘 중 더 공감이 가는 건 아무래도 안티고네 쪽이겠다.
▲나는 그렇다. 일단 내 나이에서는 안티고네가 매력이 있다. 안티고네가 하는 행동들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의지, 개인의 의지, 정의를 가지고 어마어마한 권력과 맞받아치고 죽음으로써 끝까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 옳다는 얘기는 못하겠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이스메네라는 동생 역할이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그쪽에 더 공감이 갈 것이다. 크레온 왕이 오빠의 시체를 묻어주면 안된다고 명령하는데 나는 그걸 어긴다. 그게 도리이긴 한데 사실 남들은 무서워서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동생 이스메네는 '빤히 들키는 일인데 왜 그런 일을 저지르냐'고 묻는다. 아마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메네 같은 입장이 가장 많을 것 같다. '누구는 그걸 몰라? 그러나 그게 죽는 길이고, 위험한 일이고, 큰 파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얌전히 살자'라는 게 아마 우리 현대사회의 인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배우 김호정이 전경의 폭행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났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그거는 정말 오보다(웃음).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과 같이 본 거다. 그러고서 분장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있는데 다른 배우에게 또 전화가 왔다. 다른 배우가 전화를 주는 바람에 내가 신고한 것처럼 알려진 것 같다.
-안티고네 같은 이미지가 겹친다.
▲안티고네 같은 이미지가 나한테 좀 많다(웃음). 이 작품에서 돌직구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한다고(웃음). 근데 아무래도 이 역할을 맡다보니 사실 안티고네와 더 비슷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나더러 연습 초반 때와 달라졌다고 많이 얘기한다. 계속 나한테 무섭다고 하고, 눈빛도 안 준다고 하고(웃음).
-한태숙 연출과 두번째 작업이다.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닌데 두번째 만나는 것이면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없다(웃음). 워낙 어렸을 때 만났다. 그때가 99년이니까 지금 15년 만에 뵙는 거다. 선생님은 예전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애착을 가지셨는데 지금은 뭐, 거장이시다. 최고 연출가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는데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여러가지로 '아, 나는 멀었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선생님 작품인 <오이디푸스>를 너무 잘 봤었다. 올라가는 작품마다 너무나 성심성의껏 만드신다. 정말 너무 멋있는 연출가고, 내가 생각했을 땐 최고의 연출가다. 그래서 너무 기쁘다. 거기다가 이런 그리스 비극 같은 작품은 배우에게 매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신과 나, 운명 같은 거대한 주제를 가지고 만들지 않나. 보통의 사랑 이야기처럼 소소하고 작은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정말 해볼 만 하다. 또 언제 이렇게 큰 역할을 해보겠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굉장히 행복한 것 같다.
-고전을 실험적으로 푼 연극에 비교적 많이 출연하는 편이다. 이런 작품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깊이 있는 고전 연극작품은 배우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물을 공부하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굉장히 매력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고전을 선택한다기보다 그 작품의 인물이 어느 정도 매력이 있느냐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스스로 배우로서, 개인 김호정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없다, 나는.
-청초한 배우, 분위기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 많이들 한다.
▲그랬었지 않나. 근데 바뀌었다. 이제 절대 그런 말들 안한다. 머리 길었을 때 듣던 말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니 배우들은 내게 그 전 모습이 안 떠오른다고 한다. 많이 달라졌나보다. 요즘의 나는 굉장히 솔직한 것 같다. 말도 바로바로 한다. 청초한 건, 정말 나와 맞지 않다. 그건 이제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웃음).
-변화에 만족하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갖고 있는 본성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웃음). 사실 예전에 작품에서 우울하고 얌전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청초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거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럴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난(웃음).
-<안티고네>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재밌게 보실 거다. 근데 그 재미라는 게 감히 얘기하건대 굉장히 연극적이면서 또 생동감 있는 재미다.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연극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노회하고 오만한 정치9단 크레온' 신구
-현재 드라마와 연극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연극을 함부로 못한다. 팀에 지장을 주게 되면 서로 안 좋지 않나. 내가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을 때, 그래도 5분의 4 이상 연습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연극을 한다.
-크레온 역은 이번이 처음이고, 게다가 현재 맡고 있는 드라마 배역과는 결이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다. 두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시시때때로 역할을 전환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결이 다르다. 그런데 배우는 한달 사이에도 다른 색깔, 다른 형태의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노력을 해야한다.
-아무래도 에너지가 더 든다고 보면 되나?
▲작품이나 역에 따라 경중이랄까, 그런 게 다를 수 있다.
-이번 작품에 배우 김호정과 함께 출연한다. 에너지가 만만치 않은 배우다. 공연 연습 중 기싸움, 긴장감이 팽팽할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자기 역할에 충실하는 거니까, 뭐. 객관적으로 보면 기싸움 같이 보일 지 모르지만 그건 상대를 의식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역이 그런 거다. 역들이 부딪힐 땐 부딪히는 거다.
-상대역 김호정과의 호흡은 어떤가?
▲나는 저 친구와 처음 연극을 해본다. 우선 첫 인상이 좋았다. 연습하는 과정에 보니까 아주 열심히 하는 친구다. 그래서 난 흡족하다.
-선생님 만큼 열심히 하나?
▲나야 뭐, 열심히 하는 건 아니고(웃음).
-배역을 떠나서 개인으로 보면 크레온과 안티고네 중 어느 쪽에 마음이 가는지?
▲편을 들고 말고가 없다. 작품 안에서 양쪽 다 주장이 정당하다.
-크레온의 세계관 중 가장 공감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크레온은 제도나 법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싶은 국가 지상주의자이지 않나. 남성 우월주의자이기도 하다. 반면에 안티고네는 관습법, 자연법, 신의 법 쪽을 주장하기 때문에 사실 존중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미치는 거다.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자기 오빠를 묻어줘야 된다고 말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고 새나 짐승이 뜯어 먹게 놔 두면 굉장히 치욕적일 것이다. 그런데 내 입장은 말하자면 '침략자고 반역자인데 네 오빠라고 해서 그럴 수 없다. 뜯어먹게 내버려 둬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크레온이 너무 우직하고 우매하고 어리석게 자기 주장만 일관되게 해서 결국은 비극들이 일어나는 거다.
-그리스 비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스 비극이라는 게 운문극 아닌가. 장대하고 피할 수 없는 비극이고, 대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파탄에 빠지는 그런 극들이니까 일반 시민같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아무래도 격이 다르다.
-이번에 경사무대를 쓴다. 경사무대가 크레온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나?
▲그건 모르겠다. 난 크레온을 상징하는 무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티고네를 표현하기 위한 연출의 컨셉트일 것이다.
-한태숙 연출가의 스타일은 어떤가? 연출 디렉션을 많이 하는 편인가?
▲한태숙 같은 연출가의 스타일에 난 익숙해 있다. 전에 류덕형, 이윤택, 오태석 같은 연출가들과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
-예언자 트레시아스는 배우 박정자가 맡는다. 작품을 만들면서 젊은 배우들 외에 비슷한 연배가 있으면 의지되는 면이 많이 있지 않나?
▲그렇다. 특히 박정자 선생은 우리나라 연극계에서 첫째 손가락에 꼽는 분인데 같이 공연을 하니 좋다.
-연습 막바지다.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크레온이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안티고네를 사랑하는 자기 아들, 부인 에우리디케를 다 죽게 만든다. 크레온이 나중에 울부짖는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어서 내 운명 중에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와서 나를 처리해달라'라고 부르짖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