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안드레이 서반의 연극 <크라이스 앤 위스퍼스>가 국립레퍼토리시즌 해외 초청작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은 스웨덴의 걸출한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장르적 특성상 연극은 영화보다 적은 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상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연출가는 관객 수와 무대를 더욱 극단적으로 줄였다. 그 결과 이야기 속 캐릭터의 '외침'과 '속삭임'이 극대화됐으며, 작품은 단순히 베르히만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서서 영화에 대한 연극이자 연극에 대한 연극이 됐다.
서반은 영화의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영화제작 과정 전체를 무대화했다. 관객은 마치 영화촬영장을 방문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극장 로비의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이름이 적힌 감독용 의자가 놓여 있다. 잠시 후 졸트 보그만이 관객 속을 헤집고 나와 테이블 위 감독 의자에 앉으며 자신이 잉그마르 베르히만 역을 맡게 됐다면서 영화의 제작과정과 출연 배우들을 소개한다.
(사진제공=국립극장)
이윽고 관객은 강렬한 빨간 빛깔의 방으로 인도된다. 이곳이 베르히만의 영화세트장인 셈이다. 베르히만은 이 방 안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둘째 아그네스, 부유하지만 우울한 첫째 카린, 미와 감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막내 마리아, 이들 모두를 돌보는 하녀 안나 등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
연극에서도 베르히만 영화에서처럼 신의 부재, 인간의 방황과 죽음의 그림자, 부르주아 가정의 파괴, 의사소통의 부재가 진지하게 다뤄진다. 가장 큰 차이점은 '컷'을 외치는 감독과 조연출의 존재다.
병마와 싸우던 아그네스는 '컷' 사인 이후 죽어가는 연기를 못하겠다며 다른 배우들과 낄낄 거리고, 마리아는 모든 남자 배우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맡는 것이냐며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하고 감독을 슬쩍 희롱하기도 한다. 공연은 이처럼 희비극적 면모를 지니면서도, 간헐적으로 울리는 시계 초침 소리 속에 이 같은 '모호한 예술적 열정이 인생을 견디게 하는 수단'이라는 메시지를 관객의 가슴 속에 깊이 꽂아 넣는다.
관객과의 상호작용도 이 공연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작은 방 안에서 배우들은 50센티미터도 안 될 만한 거리까지 관객에게 다가온다. 19금 연극답게 아찔한 자해 장면, 동성애 장면이 서슴 없이 관객 눈 앞에서 벌어진다. 배우들은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비명을 내지르기도 하고, 내밀한 비밀을 속삭임처럼 주억거리면서 실감나게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한다. 마리아 역할을 맡은 배우는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삶의 고통 속에서 해방된 후 심지어 관객들과 직접 손을 잡기도 하는데, 이 모습은 눈물 겨운 위로로 다가온다.
서반은 '연극이 현명한 아내라면, 영화는 매력적인 정부'라는 베르히만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너무나 생생해 때로는 아픈 연극적인 감동을 담아내면서도 영화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연극적인 방식으로다.
무대에서는 스태프 두 명이 실시간으로 팔로우 조명을 잡으면서 배우들의 얼굴을 극대화해 비추는데 이로써 영화의 클로즈업 효과가 난다. 자매들과 하녀 안나가 다 함께 그네를 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무대 뒤편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때 베르히만 역의 배우는 역할에서 빠져나와 무대에 털썩 앉아 영화를 감상하고, 나머지 배우들은 그네를 탄 채로 차례로 관객 쪽에 얼굴을 돌리며 이제까지 연기한 캐릭터의 정수를 뽑아 표정에 담아낸다.
더 없이 내밀하게 인간 내면의 아픔을 잡아내면서도 유머러스한 제스처를 잊지 않는 이 작품은 최근 몇 년 래 내한한 연극 중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우리 삶에서 예술의 가치란 어떠한 것인가를 덤덤하게 보여줌으로써 예술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회복하는가 하면, 연극이란 장르에 대한 애정과 장점도 더할 나위 없이 듬뿍 담아낸 사랑스러운 공연이다.
연출 안드레이 서반, 제작 루마니아 클루지 헝가리어 극단, 출연 졸트 보그단, 에목 카토, 아니코 페토, 이몰라 켄지, 질라 바르가, 질라 알버트, 2일부터 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