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클래식 마니아들에게 음악의 본고장 유럽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유서 깊은 극장에서 현존하는 거장의 음악을 만끽하는 것은 클래식 마니아에게 버킷리스트(죽기 전 해야 할 일 목록)나 다름 없다. 그러나 비용, 시간 등 여러 물리적 환경 때문에 선뜻 떠날 수 없는 게 보통 사람들의 현실이다. 다행히도 대리만족 할 기회가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승열의 신간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투티 펴냄)를 통해서다.
(사진제공=투티)
2000년부터 2001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5년간 유럽 30개 도시에서 889회 공연을 접한 저자는 책에서 48편의 무대를 엄선해 소개한다.
파리, 뮌헨, 바덴바덴, 베르사유, 슈투트가르트, 생 드니, 자르브뤼켄, 바젤, 오랑주, 런던, 암스테르담, 브장송, 제네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취리히 등 유럽 구석구석이 클래식 마니아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세계 유수의 클래식 음악가 외에 김승열의 땀과 열정도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1장 오케스트라 무대와 2장 오페라 무대로 구성돼 있다. 먼저 오케스트라 무대 부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에서 공연한 적 없는 거장들의 연주 현장이다. 피에르 불레즈, 클라우디오 아바도,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스타니슬라프 스크로바체프스키, 콜린 데이비스, 조르주 프레트르, 제임스 레바인, 알도 치콜리니, 알프레드 브렌델, 마우리치오 폴리니, 이반 모라베츠 등 클래식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꿈의 이름과 무대가 등장한다.
저자는 거장의 이름에 압도되지 않고 구체적인 분석과 직설적인 묘사를 내세워 글을 전개해나간다. 2007년 7월7일 독일의 바덴바덴 축제극장에서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낭만적’'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보자.
"오직 폭발만을 향해 똬리 틀고 있는 무뚝뚝한 템포가 아니라, 인 템포의 올곧음 속에서 펼쳐진 블롬슈테트의 지휘는 극명한 성부 분리까지 동반한 매우 지적인 것이었다."(18쪽)
이처럼 찬사의 이유가 명확한 덕분에 연주가 귀에 선명히 들리는 듯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기대에 못 미친 연주에는 거침 없이 쓴 소리를 내뱉는다. 2007년 9월 4일 파리 살 플레이엘 공연을 전한 부분이 그렇다.
"레바인의 열정적인 지휘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공연은 완전치 못했다. 무엇보다 이름값 못한 주요 독창자 3인의 난조에다 묵직하지 못한 보스턴 심포니의 경질의 톤이 이를 부채질했다."(27쪽)
소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처한 환경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어우러지면서 깊이 있는 감상의 길로 유도한다.
2부 오페라 무대 부분에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희귀 걸작 오페라가 눈길을 끈다. 바그너의 처녀작 '요정들'과 베를리오즈의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스콧 조플린의 '트리모니샤', 빌라 로부스의 '막달레나', 샤브리에의 '못 말리는 왕', 메사제의 '포르튀니오', 오베르의 '프라 디아블로'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연출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오페라 무대 사진이 컬러로 실려 있어 공연의 현장감을 십분 살려낸다.
이밖에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 소프라노 조수미와 임선혜, 바리톤 고성현 등 한국 음악가들의 유럽 무대도 빠뜨리지 않고 소개함으로써 해묵은 궁금증을 해갈하는 데 일조한다.
책은 이처럼 유럽 무대 현장을 눈에 보일 듯 귀에 들릴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책의 구성 부분에서 독자의 편의를 좀더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연 당시 상황과 달리 책 집필과정 중 작고한 음악가의 경우, 해당 사실을 서문에서만 언급하기보다는 본문에서 짤막하게나마 부연설명으로 제시했다면 읽기가 더욱 편했을 것이다. 또 책 말미에 음악가나 극장의 이름에 대한 색인이 없는 점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