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사진)가 자신이 주도해 설립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이끌고 지난 1일 LG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의 음악 두 곡을 선보였다. 2006년 바흐 'b단조 미사'로 국내 관객과 조우한 이후 두 번째 여는 내한 공연이다.
2일까지 양일간 펼쳐지는 이번 연주회에 대한 기대치 중 8할 정도는 '고음악의 대가'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주피터와 레퀴엠이라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고음악이란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파 등 옛 음악을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화려함과 기교를 내세우기보다는 음악의 순수성을 복원하고 되살리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자는 게 기본 취지다. 헤레베헤는 바로 이 고음악의 선봉장 격으로 여겨지는 지휘자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번 헤레베헤의 공연은 전문 원전 연주단체의 음악이라는 단순한 수식어를 넘어서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보통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 공연의 경우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원전 악기의 소리를 일반 오케스트라 연주와 비교하는 재미로 듣게 된다. 그러나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연주는 소리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롯이 모차르트의 음악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악기의 모양이나 소리의 다름에서 오는 쾌감을 넘어서서 곡의 전달과 해석에 온전히 헌신하는 데서 비롯되는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1부에서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1번 C장조 '주피터', K.551을 연주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진 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각 프레이즈마다 거친 생동감이 넘쳐 흘렀는데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알레산드로 모시아의 탄력적이면서도 힘 찬 보잉과 팀파니스트 마리-앙주 페티의 진중하면서도 정확한 타주가 음악의 완급을 주도했다. 온 몸의 마디와 잔 근육을 활용하는 듯한 필립 헤레베헤의 격식 없는 지휘법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음악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모두가 하나로 헌신하는 모습이었다.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보통은 쉬어가는 의미로 가벼운 곡을 연주하기 마련인데 같은 곡 3악장을 다시 한번 연주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는 극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이고 우아한 분위기의 레퀴엠 D단조, K.626을 선보였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바로크 시대의 연주법을 성악곡에 적용시킨 최초의 앙상블 중 하나로 꼽히는 단체다. 이 합창단의 곱고 섬세한 소리는 곡이 끝날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속됐다. 마치 바로크 시대 성당의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같은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함께 무대에 선 협연자는 소프라노 임선혜, 알토 크리스티나 하마슈트룀, 테너 벤자민 훌렛, 바리톤 요하네스 바이써였다. 다들 출중한 기량을 뽐내는 가운데 단연 돋보인 것은 요하네스 바이써였다. 베이스가 아닌 바리톤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내심 '묵직한 감동은 덜 하겠구나' 싶었지만 기우였다. 이 노르웨이 출신의 바리톤 성악가 요하네스 바이써는 첫 소리부터 관객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으며 무대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헤레베헤는 베이스 대신 바리톤을 기용하는 동시에 메조 소프라노 대신 알토를 무대에 세워 솔리스트 간 소리의 무게 균형을 맞췄다.
마지막 앙코르 곡인 모차르트의 또 다른 종교음악 '아베 베룸 코르푸스'가 직전 곡인 레퀴엠의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이어갔다. 두 번의 앙코르 곡을 선사하기 전 구구절절 한 설명을 대신해 헤레베헤가 짤막하게 내뱉은 '포 유(For you)'라는 말이 이날 연주회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이날 연주는 날카롭고 세련된 협주와는 전혀 다른 결로 음악 본연의 순수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정중동의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