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현대무용의 강국인 독일에서 세 차례의 순회 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독일의 뷔츠부르크시립극장, 바트홈부르크극장, 베를린축제극장 등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한 지 3년 만에 지난해 멕시코, 미국 초청공연과 더불어 해외진출을 연이어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독일에서 선보일 작품은 2012년 홍승엽 예술감독의 신작공연인 <호시탐탐> 중 호랑이로 상징되는 탐욕과 악행의 유혹에 직면한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다룬 '라쇼몽-어쩔 수 없다면'과 '냅다, 호랑이 콧등을 걷어찼다' 등 2개로 구성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독일에서 선보일 '라쇼몽-어쩔 수 없다면(좌)'과 '냅다, 호랑이 콧등을 걷어찼다(우)'의 한 장면(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7월 8일 열리는 뷔츠부르크시립극장 초청공연의 행사명은 '뷔츠부르크 유럽도시 지정 40주년 기념 <발레 갈라 2013>'이다. 덴마크 왕립발레단, Het 암스테르담 국립발레단, 체코 프라하국립발레단, 아테르발레토 이탈리아 국립발레단, 스웨덴 예테보리 발레단 등 세계 최정상급 국립발레단이 참여하는 이 무대에 아시아 단체로는 유일하게 국립현대무용단이 참여한다.
7월 24일 독일 바트홈부르크극장 공연과 7월 27일 베를린 축제극장 공연은 '한·독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바트홈부르크 공연은 '댄스 라인마인' 축제 측의 초청으로 성사됐으며, 공연 출연료뿐만 아니라 체재비를 지원 받는다. 베를린축제극장 공연은 해외문화홍보원의 예산 지원과 주독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의 협조를 통해 이뤄진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내 국립현대무용단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국립현대무용단의 독일 진출과 관련해 "최고 공연예술문화를 자랑하는 독일에서 두 곳의 극장이 우리 작품의 수준을 확인하고 공연을 요청했다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공연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 기쁜 사건"이라며 "오는 7월 말 임기가 마무리되는데 피날레를 제대로 장식하는 것 같아 흐뭇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홍승엽 감독과의 일문일답.
-독일에서 진행할 세 공연에 대해 소개해달라.
"독일의 세 극장에서 공연이 잡혀 있는데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은 비슷하지만 공연의 특성이 각기 다 다르다. 이중 베를린 공연의 경우 한·독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익숙한 형태의 공연이라 볼 수 있다.
바트홈부르크의 경우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자료를 보고 우리 쪽에 직접 연락을 해온 경우로, 개런티를 받고 움직인다. 예전에 독일에 출장을 갔을 때 몇몇 극장에 공연 자료를 전달하고 돌아온 일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극장 측에서 초청했다. 유럽 극장은 고정관객이 있는데 하루 저녁의 전체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맡겨 놓은 셈이다. 우리 단체의 수준을 신뢰했다는 의의가 있다.
뷔츠부르크 공연은 베를린과 바트홈부르크 공연의 물밑작업이 한참 진행되는 중에 연락을 받았다. 사실 처음에는 갈라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묻길래 좋은 조건이 아니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갈라에 어느 단체가 참여하느냐고 물으니 덴마크 왕립발레단, 체코 프라하국립발레단 등 유럽 최정상 단체들의 이름을 대더라. 유럽의 컨템포러리 발레단들이 자존심을 세우는 갈라 공연에 우리가 포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세 공연 중 안무자로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공연은 바트홈부르크와 뷔츠부르크 공연이다. 현지의 공연예술 기획자로부터 검증을 받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현대무용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나라다. 그쪽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중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고 보나?
"현대무용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는 안무가의 철학이다. 이와 더불어 얼마나 다른 방식의 표현방법을 썼는가, 즉 창조성을 본다. 이전의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경우 그들이 보기에 '저건 우리 하던 방법이 아닌데, 보기에 나름 세련된 면이 있군' 하는 판단까지는 갔을 것 같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과거에는 '단순히 우린 달라'라는 카드 혹은 '우리도 너희와 비슷하잖아'라는 카드 두 개 밖에 없었다. 흉내를 내거나 혹은 지독하게 다르지만 재미는 떨어지는 경우의 두 카드였다. 그런데 이제는 '세련되면서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 카드가 국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본다. 아마 그쪽에서도 그걸 읽었을 것이다.
-해외 진출을 중요시 하는 것 같은데 이유는?
"일단 우리나라 무용공연이 세계 시장에 어느 정도는 노출돼야 하는 면이 있겠다. 또 해외진출을 통해 역으로 국내관객에게도 이만큼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공연이니 안심하고 보셔도 된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관객은 아직까지 호기심은 있으나 '저게 무슨 뜻이지?' 하는 시각에서 무용공연을 본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방식의 공연관람은 예술교육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 들으면서 '저게 무슨 뜻이지?'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 자체의 감성과 리듬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예술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공연 관람 자체가 관객에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것까지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립현대무용단이 해온 작업은 세계 톱 수준이다. 어떤 극장에서 공연하더라도, 어떤 관객이 들어온다 해도 거기서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문화사대주의 같은 생각이 남아 있는 듯하다. 자기 느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저 단체가 좋은 단체냐, 유명한 작품이냐; 등 이미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작품을 보는 것 같다. 무용수들이 외국에서 자꾸 공연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외국에서는 국내에서보다 마음을 열고 공연을 봐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전속무용수로 꾸려진 단체가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지속성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지는 않나?
"프로젝트 단체로 시작한 것은 사실 개인적으로 문화부에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다른 단체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국립현대무용단으로서는 창조성을 뽑아내기에 정말 좋은 조건이다. 무용수의 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된다고 해서 무용수가 무대에 한 번 서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무용수들 중에는 내가 만든 모든 레퍼토리에 다 참여한 친구도 있고, 해외로 진출하는 무용수도 있을 정도로 굉장히 안정감 있게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매 프로젝트마다 오디션을 보게 하는 것이 미안하긴 하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오디션은 프로젝트 단체로서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봐 달라. 누구든 똑 같은 출발선에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 부분에서 여러분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내면 된다.'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한 번이라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다음 번에 오디션을 통과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큰 프로젝트는 4~5개월 정도에 걸쳐 진행되는데 거기에 참여하다 보면 그 자체가 훌륭한 자기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임기가 올해 7월로 끝난다. 3년 간의 소회를 말해달라.
"무용계에서는 다 아는 얘기지만, 재직하는 동안 현대무용계가 아닌, 내부의 이사님들과 많이 다퉜다. 무용계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중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이사회에 모여 있었다. 새까만 후배이면서도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눈에는 현대무용계가 현실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잘 보였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는 앞으로 지옥같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는 게 보였다.
현재 '무용관객=무용과 대학생들'이라고 등식을 놓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거다. 한 학교에서 공연하면 다른 학교에서 그 공연 티켓을 소화해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청소년 인구도 줄고, '대학을 가기 위해 무용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숫자도 엄청나게 줄었다. 예전에는 학교마다 무용과를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잠재적 대상인 청소년의 숫자 자체가 줄고 있고, 또 힘든 무용을 굳이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현재 대학교 무용과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폐과하고 있거나 순수예술보다는 상업적인 쪽으로 정체성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무용계에서는 무용과가 폐지된다는 얘기 들으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다. 그게 무슨 의미냐 하면 관객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이제껏 무용학도, 공연예술인들 위주로 공연장을 채웠지 일반 관객 개발을 하지 않았으니까. 극단적으로 나는 후배들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어떤 사회에서 특정 예술장르가 존재하려면 존재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관객이 있어야 공연예술의 존재가치가 있다. 단지 예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부담을 안고 갈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감독이 되자마자 모든 프로젝트의 방향, 팸플릿의 글귀 같은 것들까지 모두 일반관객에게 맞추는 데 힘썼다. 특히 초대권 제한 같은 경우 힘들고 어렵게 계속해서 고집을 부려왔던 부분이다. 그게 심지어 무용가를 소외시키는 듯한 모양새로 보이기도 했다. 무용계 어른들은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이라고 하면 으레 초대권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임기간 중 초대권 비율을 공연 객석의 5% 미만으로 다 줄여놨다. 현재 대부분이 유료관객이라고 보면 된다. 얼핏 보면 국립현대무용단의 관객 점유율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관객의 성격이 다른 단체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팸플릿에 권위 있는 어른의 인사말, 폼 잡는 글귀 같은 것들도 처음부터 다 없앴다. 일반관객은 권위를 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보고자 하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일반관객에게 소외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추진했던 일 중에 못내 아쉬운 대목도 있다. 우리 무용계가 하루빨리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안무가 베이스캠프'라는 걸 했는데 첫 해만 하고 두 번째 해에는 극단적 반대에 부딪혀서 못하게 됐다. 반대하는 분들의 논리는 '왜 다른 단체에서도 하는 육성을 국립현대무용단이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럼 육성된 예술가는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술가로서 함께 커 나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활동을 할 경로까지 다 잘라버리려는 것인가. '안무가 육성 차원이 아니라 육성된 안무가를 객원 안무가로 활동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첫 해로 끝나버렸다. 그걸 다시 '댄스살롱'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보완해서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두긴 했지만…
어차피 처음 들어왔을 때 '신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다. 사정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대 예술감독으로서 방향은 내가 잡아두어야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방향이 바뀔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임기 동안 이 방향은 끝까지 왜곡되지 않게 가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6월 말 신작공연, 7월 해외 공연도 있어서 피날레가 제대로 장식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