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극단 청우의 창작극 <그게 아닌데>는 지난해 소극장 연극으로서 드물게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큰 주목을 끈 작품이다.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연기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연출상·연기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공연 베스트 7 등 수상의 면면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지난해 최대 화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공연기간 탓에 관람기회를 놓친 관객을 위해 현재 앵콜 공연이 진행 중이다. 공연은 오는 23일까지 정보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연의 모티브는 지난 2005년 발생한 동물원 코끼리 탈출 사건이다. 블랙코미디 형식을 띤 이 극은 담당 조련사에게 코끼리 탈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취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취조실에는 의사, 형사, 조련사의 어머니 등이 드나드는데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극은 하나의 사안을 각자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각도로 풍자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의사, 형사, 조련사의 어머니 사이 한바탕 논리 싸움이 벌어진다. 형사는 코끼리 탈출 사건이 특정 국회의원의 유세 현장을 방해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단정하고, 의사는 성행위 도착증에 걸린 환자의 환상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주장한다. 조련사의 어머니는 조련사가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풀어주기 좋아했다고 진술한다.
막상 피의자로 지목된 조련사는 상황에 따라 다른 인물의 논리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인다. 순수하지만 지능이 다소 떨어져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어리숙한 조련사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그게 아닌데'라는 말을 읖조리는데 이 중얼거리는 듯한 말투가 무대 위 소통의 부재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회색빛으로 꾸며진 취조실 공간은 자기 말만 늘어놓고 남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삭막한 사회의 현실을 대변한다. 공간의 구조도 삭막하고 폐쇄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출입문을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은 의사, 형사, 조련사의 어머니, 동료 조련사뿐이다. 조련사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소통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모습이 우리사회 소시민의 모습과 포개어진다. 황당한 논리 싸움이 절정에 이를 때쯤 동료 조련사가 등장해 자신이 목격한 바를 꽤 사실적으로 진술하지만 그가 전하는 '객관적 사실'마저도 조련사의 '주관적 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극이 진행될수록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든 논리들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과연 이 중에서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판단하기가 힘들어진다. 극은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안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모두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고 설파하는 듯하다. 결국 소통은 폐기 혹은 유보되고 무대 위에는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의 몸부림만이 남는다. 이 몸부림은 다름 아닌 소통 부재의 현실에 괴로워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비교적 짧은 공연시간 안에 사회에 대한 풍자를 깔끔하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풍자극임에도 모종의 교훈을 주입하려는 시도 없이 산뜻하고 재치있는 캐릭터들로 승부를 본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단촐한 무대 위에서 뚝심 있게 빚어낸 작가, 연출, 배우의 호흡이 빛난다.
작가 이미경, 연출 김광보, 제작 극단 청우, 출연 윤상화, 문경희, 강승민, 유성주, 유재명, 무대디자인 김은진, 조명디자인 이다경, 민상오, 음악 전현미, 의상 조문수, 움직임 금배섭, 분장디자인 길자연, 23일까지 정보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