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체홉의 명작 희곡 <갈매기>는 사람 사이 권력과 소외의 문제를 다룬다.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갈매기처럼 호수를 사랑하며 자유롭게 행보하던 젊은 예술가 연인이 기성 예술가 연인을 향한 경멸과 동경이라는 이중적 감정 속에 혼돈을 겪다 파멸한다.'
파멸은 비단 주인공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 예술가 외에도 희곡 속의 다양한 인물의 삶이 서로 대립항을 이룬다. 인정 받는 자와 인정을 바라는 자, 사랑 받는 자와 사랑을 갈구하는 자, 도시를 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등 여러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관계가 모두 이중구조로 다뤄진다. 이 이중구조에 따라 권력관계가 나뉘지만 영원불멸의 '갑'은 이 희곡 속에는 없다.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가 겉으로 크게 드러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소외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피하지는 못한다.
이 체홉의 <갈매기>를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성북동갈매기>라는 제목으로 해체•재구성해 새롭게 무대에 올렸다.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연극은 오늘,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연은 별다른 한국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동시대 우리 이야기로 읽힌다. 동시대성의 확보는 무대나 인물의 특별하고 구체적인 설정이 아니라 창작자의 화법이나 태도에서 비롯된다.
대작가 체홉의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연출가 김현탁의 공연 컨셉트 선택은 과감하기 그지없다. 무대와 연기양식을 크게 둘로 나눠 권력과 소외의 이중구조를 명확히 드러내고 물총, 빨간 분무기, 수건, 종이 등의 각종 소품과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서는 인물들의 내면 상태를 상징적•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아이디어가 많아 작품은 복잡하지만 분명한 대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 아래 연극을 만들기 때문에 적어도 모호하지는 않다. 원작 희곡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무대 위 풍경이 감각적으로 낯설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다. 마치 희곡 속 등장하는 신인작가 뜨레쁠레프의 극중극이 그랬던 것처럼.
(사진제공=극단 성북동비둘기)
무대 정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간이무대가 놓여있다. 극장 공간은 크게 간이무대 위와 아래로 나뉜다. 간이무대 위는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아래는 기득권으로부터 소외 당한 자들의 모습을 담는 공간이다. 연기양식도 간이무대 위와 아래가 분명히 갈린다. 배우들은 간이무대 위에서는 대체로 귀족적인 고상함을 띈 제스처와 말투를 기반으로 연기하지만, 간이무대 아래에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연기한다. 간이무대 위는 자신을 남과 구분해주고 때로는 남의 시선으로부터 숨겨줄 '커튼'이 있는 공간이고, 무대 아래는 노래와 절규로 속내를 풀어낼 '마이크'와 일상에서 흘린 땀을 식힐 '선풍기'가 필요한 공간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들의 내면이 파괴되는 과정이다. 간이무대 아래에 머물던 인물이 무대 위로 올라가려 하고, 위에 머물러야 할 인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각 인물의 마음 속 갈등이 점차 커진다. 여배우 지망생 니나는 연인인 뜨레쁠레프의 어머니이자 유명 여배우인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애인인 작가 뜨리고린의 유명세를 동경한 나머지 연인인 뜨레쁠레프를 부정하고 간이무대 위로 올라서서 그들과 합류한다. 무대 위에서 원피스와 청재킷, 스니커즈 차림인 니나는 격식을 갖춘 복장을 한 기성세대를 보며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짐짓 흉내내기에 바쁘다. 반면 무대 위에서 도도한 태도로 일관하던 아르까지나는 니나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뜨레고린을 잡고자 무대 아래에 내려와 하이힐 차림으로 벅벅 기며 매달린다.
양쪽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가운데 연출가는 관객을 예외로 두지 않는다. 주요 장면 중 하나인 뜨레쁠레프의 극중극 대목에서 관객 역시 전복을 경험한다. 통상적인 <갈매기> 공연과는 달리 <성북동갈매기>에서는 뜨레쁠레프와 니나의 공연이 간이무대가 아닌 간이무대 아래의 객석 공간에서 벌어진다. 니나는 관객을 등진 채 극중극을 시연하고 관객은 니나와 함께 무대 조명 대신 형광등 아래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 속 주인공이 된다. 동시에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향해 앉은 나머지 배우들의 비난과 조롱도 함께 감수하게 된다.
중간중간 동음이의어의 활용, 마이크 선을 이용한 낚시, 물총싸움, 칼싸움 등 다소 치기어린 장난처럼 보이는 장치에도 불구하고 극은 신기하게도 정점으로 수렴된다. 어른의 모습을 한 니나와 뜨레쁠레프의 마지막 비극적 만남 장면은 오브제, 연기양식, 공연형식 등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며 깊은 잔상을 남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나머지 출연 배우들과 함께 이들의 모습을 '관람'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고 다시 한번 입장의 전복을 경험한다.
(사진제공=극단 성북동비둘기)
이 때쯤이면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극중극 때 들은 뜨레쁠레프의 대사("제가 큰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희곡을 쓰고 또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선택된 소수만의 특권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 특권을 침범했군요!")와 아르까지나의 대사("저건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나쁜 근성일 뿐입니다.")가 변증법적으로 합쳐질 것이다.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성북동갈매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에 담아낸 '내용'은 결국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소외의 감정이다.
원작 안톤 체홉, 재구성•연출 김현탁, 출연 신현진, 김진아, 김정석, 김미옥, 성석주, 최수빈, 최영열, 오현우, 이재혜, 송석근, 염문경, 기술감독 서지원, 조명감독 김은주, 분장 정지호, 소품 이진성, 의상 정인정, 기획•제작 극단 성북동비둘기, 8월 11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