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브라질월드컵을 졸전으로 마친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비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의 인맥 위주 선수 선발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선수 선발의 최우선 기준으로 생각하겠다던 홍명보 감독은 원칙을 깼다.
그 결과 박주영(전 아스널)은 경기 감각이 올라오지 않은 채 선발됐다. 대회 도중 그는 아스널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의 떨어진 기량이 고스란히 월드컵에서 드러났기에 유럽 내 이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의 욕심은 박주영의 선수 생활에도 일정 부분 피해를 줬다.
박주영뿐만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 원칙을 깨트리며 피해를 본 선수 중에는 이명주(알아인)가 있다.
◇포항 선수들과 환호하고 있는 이명주. (사진=포항스틸러스)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명주는 꾸준히 K리그에서 활약하다 월드컵을 앞두고 절정의 경기력을 보였다.
2010년 포항에 입단한 이명주는 K리그 클래식에서 3시즌 동안 80경기에 출전해 17득점 19도움을 기록했다. 입단 첫해인 2012년 FA(축구협회)컵 우승과 2013년 K리그 클래식과 FA컵 '2관왕'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올 시즌 K리그 전반기에서도 이명주는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5골 9도움)를 달성하며 이 부문 K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5월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두고 한 축구 관계자는 "이명주의 움직임이나 리그에서의 활약이 좋다. 기록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으냐"면서 "수비에서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기성용이 조기 귀국하는 등 자칫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명주의 공격적인 면도 충분히 필요한 명분이 생겼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그럼에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홍명보 감독은 이명주를 제외했다.
이명주를 뽑지 않은 것에 대해 홍명보 감독은 수비력 부재를 첫손에 꼽았다. 이때부터 K리그 최고의 스타도 대표팀에 들어갈 수 없느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시작했다.
이명주의 자리는 구자철(마인츠)과 기성용(스완지시티)을 포함해 한국영(가시와레이솔), 박종우(광저우부리), 하대성(베이징궈안)이 채웠다.
하지만 기성용의 공격부담을 덜어줄 선수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한 축구 관계자는 "구자철은 구단을 옮기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세밀함이 조금 떨어졌다. 기성용 혼자 공격적인 전개를 하기에 부담이 많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영은 '제2의 김남일'이란 소리를 들었다.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했다. 박종우와 하대성은 아예 경기 출전 자체를 하지 못했다.
과거 경력보다는 현재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선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주목받았다.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 강조했다 깨트린 '경기 감각'의 중요성이 새삼 드러났다.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전에서 처음 출전해 '선방쇼'를 펼친 김숭규. ⓒNews1
경기 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는 일본의 가가와 신지(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들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그는 월드컵 직전까지 들쭉날쭉한 출장 시간을 겪었다.
결국 이번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가가와는 명성에 한참 뒤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제아무리 아시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어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감각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함을 증명했다. "4강을 가겠다"던 일본은 가가와의 뜻하지 않은 부진이 겹쳐 조별리그 4위에 그쳤다.
반면 리그에서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꾸준히 경기에 뛴 선수들은 제 몫을 다했다. 특히 K리거들에 대한 여론은 브라질월드컵을 계기로 오히려 좋아졌다.
고비마다 교체 투입돼 1골 1도움을 기록한 이근호(상주상무)가 대표적이다. 김신욱(울산현대)도 알제리와 벨기에전에 출전해 주어진 여건에서 충분히 자기 몫을 다했다. 골키퍼 김승규(울산현대)의 벨기에전 선방은 전 세계의 눈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왜 일찍 활용하지 않았느냐는 의문만 증폭시켰다.
이들 모두 월드컵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전망이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장 기회를 잡으며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다. 이근호의 경우 오는 9월 상무 전역 이후 해외 리그 진출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얻은 것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인터뷰 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얻었는지 찾기는 어렵지만 일단 K리거들의 자신감 획득이 가장 큰 수확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최고의 경기력이라는 조건을 갖추고 미래를 위한 경험까지 쌓을 수 있었던 이명주의 탈락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이명주. (사진=포항스틸러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은 오는 5일 월드컵 휴식기 이후 후반기를 시작한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유럽 리그 선수들 못지않게 활약한 이근호, 김신욱, 김승규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포항에서 뛰던 이명주는 이제 없다. 그는 지난 9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아인으로 이적했다. K리그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행진을 벌이던 그는 "축구선수로서 미래와 한계에 새롭게 도전하고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적 이유를 전했다.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것만 보고 열심히 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더 공격적인 포지션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지금 현재 모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던 이명주는 대표팀 탈락과 월드컵 개막 사이에 K리그를 떠났다.
K리그 역대 최다 이적료(350만 달러)인 이청용(2009년 FC서울→볼튼 이적)의 기록을 넘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 가운데 이명주는 자신만의 명예와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